한컷 한컷 필름의 전환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영화 같은 공간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94) 부산 영화의전당

BIFF 개·폐막식 장식하는 전용관
건축그룹 쿱 힘멜블라우 설계작
얽매이지 않는 자유 ‘해체주의풍’

거대 지붕·구름다리 세 건물 연결
수직보다 어긋나고 틀어진 조형미
방문객 동선 따라 다른 풍경 선사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극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영화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럼 공간적으로 ‘영화와 같은’이라는 표현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영화는 수십 개의 장면(Scene)과 수천 개의 컷(Cut)이 조합되어 완성된다. 공간은 그 배경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연속되는 배경들이 실제로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공간이거나 완전히 다른 시간대이기도 하다. 스크린 너머의 관객은 장면과 컷으로 파편화된 시공간을 감독이 의도한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건축가가 현실의 대지 위에 시시각각 변하는 장면을 이루는 공간을 만들고, 사용자가 이를 이어붙이게 만든다면 어떨까· 가장 ‘영화 같은’ 공간이 되지 않을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리는 영화의전당이 바로 이런 구성으로 만들어졌다.

부산 영화의전당 건물을 잇는 공중 통로는 마치 세상을 배경으로 풀린 영화 필름 같다. 그 필름을 따라 걸으면, 영화의전당을 구성하는 세 건물의 조형과 4000여석 규모의 루프시어터(Roof theater), 그리고 주변 도시의 풍경이 교차 편집된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한 전용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2001년 처음 제기되었다. 이후 3년이 지나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건립부지로 센텀시티를 확정했다. 영화의전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부산국제영화제는 일반 극장을 대관해 개최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개최 시기가 일정하지 않았다.



건축물 설계를 위한 국제지명현상설계는 2005년에 열렸다. 당시 해외건축가 7팀이 초청되었는데, 당선자로 오스트리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그룹 쿱 힘멜블라우(Coop Himmelb(l)au)가 선정됐다. 2008년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다음 달에 착공된 영화의전당은 3년 후 제16회 영화제의 개·폐막식 장소가 됐다.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영화의전당 시네마운틴 내부. 층간의 관입과 시선의 관통을 통해 매 순간 변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세 개의 극장과 공연장이 있는 시네마운틴 6층에서 짧은 건축 소개를 확인할 수 있다. 내용을 보면 발음하기 힘든 설계자의 이름과 함께 영화의전당을 “해체주의풍 건축 작품”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체주의’라는 명칭은 1988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최된 ‘해체주의 건축(Deconstructivist Architecture)’이라는 전시에서 처음 등장했다. 전시를 기획한 마크 위글리(Mark Wigley)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은 그전까지 건축계의 주류였던 모더니즘의 순수한 기하학을 파괴하고 시각적으로 불안정함을 추구하는 7명의 건축가를 전시에 초대했다.

그리고 그들의 작업을 관통하는 사상으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 개념과 1910~1920년대 러시아에서 일어난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인 ‘구성주의’가 있다고 통찰했다. 흥미로운 건 전시에 초청된 건축가 중 누구도 자신의 건축을 그렇게 정의하지 않았다. 쿱 힘멜블라우도 이 전시에 참여한 건축가 중 한 팀이었다.

전통적인 위계에 반론을 제기하며 순수성을 교란하고자 했던 쿱 힘멜블라우의 공동 창업자인 볼프 프릭스(Wolf D. Prix)는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 ‘공공 영역과 사적 영역’이 중첩되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서로 다른 듯한 공간과 영역을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서로 포개어 놓았다. 그리고 ‘플라잉 루프(Flying roof)’라는, 기둥 없이 공간을 덮는 구조물을 씌웠다. 이후 2만3000여개의 LED가 설치된 거대한 지붕을 그는 ‘버추얼 스카이(Virtual Sky)’라고 불렀다.

‘지붕’과 ‘하늘’은 쿱 힘멜블라우가 오랜 시간 관심을 기울여 온 화두였다. 이는 그들의 이름에 들어간 ‘(l)’이라는 표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l’이 포함된 ‘Himmelblau(힘멜블라우)’는 독일어로 ‘하늘색(Himmel·하늘 + blau·파란색)’을, ‘l’이 빠진 ‘Himmelbau(힘멜바우)’는 ‘하늘 건축(bau)’을 뜻한다. 여기에 ‘협동조합(Coop)’을 붙였으니, 결국 ‘l’의 유무에 따라 ‘하늘색 협동조합’ 또는 ‘하늘을 짓는 협동조합’을 의미하게 된다.

그들은 이러한 언어유희를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건축은 파란 하늘의 구름처럼 ‘유동적으로 변하는 형태’이며, 그래서 이루고자 하는 가치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영화의전당은 건축의 형태와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움직이기를 원하는 쿱 힘멜블라우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대지 북쪽과 남쪽, 그리고 APEC나루공원과 마주한 서쪽에 배치된 세 건물 ·시네마운틴(Cinemountain), 비프힐(BIFF Hill), 더블콘(Double Cone)- 로 이루어진 이곳에서 건물들의 조형은 똑바로 서 있는 벽을 찾기 힘들 만큼 어긋나고 틀어져 있다. 그래서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이를 은유적으로 묘사하면, 자신들이 만든 하늘(지붕) 아래 솟아오른 대지(건축물)가 된다. 자연에서 산, 언덕과 같은 땅은 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 형태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건물 안에서는 층간의 관입과 시선의 관통을 통해 매 순간 변하는 공간이 된다.

사용자가 바라보는 대상에 변화무쌍함을 부여했으니 이번에는 바라보는 이들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각은 움직임과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건축가는 대지를 비워 사용자들이 영화의전당 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대지 이외에 사용자가 이동하는 궤적을 추가했다.

더블콘으로 연결되는 공중 통로와 수영강 건너편의 도시 풍경.

전자의 전략도 영화의전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지붕으로 실현된다. 더블콘에서 최대 85m가량 뻗어 있는 평평한 빅루프, 그리고 시네마운틴과 비프힐을 연결하는 기울어진 스몰루프는 부산국제영화제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다양한 행위를 품는 천장이 된다.

최대 85m 빅루프는 솟아오른 대지(건축물)를 덮는 가상의 하늘(지붕)이다.

후자의 전략은 세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가 구현한다. 통로는 와이어를 이용해 지붕에 매달려 있다. 그래서 두레광장의 열린 상태는 방해받지 않는다. 공중에 떠 있는 통로는 마치 세상을 배경으로 풀린 영화 필름 같다. 그 필름을 따라 걸으면, 영화의전당을 구성하는 세 건물의 조형과 4000여석 규모의 루프시어터(Roof theater), 그리고 주변 도시의 풍경이 교차 편집된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이 영화의 결정적인 장면은 영화의전당과 마주하고 있는 수영강 너머의 도시 풍경이다. 영화제의 공간 너머로 펼쳐진 평범한 아파트가 이루는 풍경은 프레임(Frame)의 역할을 하는 지붕 아래 담기면서 유일한 장면으로 바뀐다. 그리고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경사로를 걷는 사람들이 그 장면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 컷은 부산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건축가가 연출한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미장센(Mise-en-scene)이 된다.

올해도 10월6일부터 이곳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우리가 배우라고 부르는, 다른 공간과 시간대가 연결되는 영화에서 그 다름이 느껴지지 않도록 감정과 모습을 이어가야 하는 이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섰다. 레드카펫 위에서 고단함을 이겨낸 화려한 모습으로. 그리고 영화의전당은 또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배경이 될 것이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