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랩을 시작한 청년 래퍼의 절반 가까이가 수도권으로 거점을 옮겼거나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지역으로 내려간 래퍼는 거의 없었다. 지역에 남은 이들이 꼽은 가장 큰 아쉬움은 무대도, 돈도 아닌 사람이었다.
세계일보가 전국 래퍼 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 래퍼 설문조사’를 13일 분석한 결과, 지역에서 음악을 시작한 53명 중 23명(43.4%)이 ‘서울·수도권으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고 답했다. 2명은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반면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옮긴 이는 2명뿐이었다. 응답자의 66.3%(53명)가 현재 수도권에 산다. 조사는 웹 설문 방식으로 8월20일부터 9월21일까지 진행됐다.
떠난 이유는 인프라와 사람이었다. 지역에서 시작해 서울로 온 20대 초반 래퍼는 “공연장, 주위 사람들의 도움,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대면 교류 등 서울에 와서 잠깐 해 보니 많은 차이를 느낀다”고 적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서울에 있어서 연을 쌓기 위해”, “지역 내 힙합 장르에 대한 혐오와 멸시 때문”이라는 답도 있었다.
남은 래퍼들의 살림은 뜻밖에 수도권보다 나았다. 비수도권 거주 응답자 26명 중 8명(30.8%)이 최근 1년간 음악으로 500만원 이상을 벌었다. 수도권 거주자는 53명 중 3명(5.7%)에 그쳤다. 차이는 레슨·강의에서 났다. 비수도권 응답자의 42.3%가 레슨·강의를 주요 수입원으로 꼽아 수도권(13.2%)의 3배를 넘었다. 음악 수입만으로 생활한다는 5명은 모두 지역에 남은 래퍼였고, 전원이 레슨·강의로 생계를 잇고 있었다. 음악창작소·문화재단 지원을 받아본 비율도 비수도권(30.8%)이 수도권(11.3%)보다 높았다.
다만 이는 버텨낸 이들의 수치다. 비수도권 응답자 중 30대와 활동 10년 이상은 각각 30.8%로 수도권(15.1%, 13.2%)의 두 배를 웃돌았다. 젊은 래퍼는 이미 떠났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사정이 넉넉한 건 아니다. 비수도권 응답자 중 정산이 크게 늦어진 경험은 34.6%로 수도권(17%)의 두 배였고, 출연료를 받지 못한 경험도 19.2%로 수도권(9.4%)보다 많았다.
필요한 지원으로 비수도권 응답자들은 제작비와 유통·홍보 지원(각 57.7%)에 이어 선배 뮤지션과의 연결·멘토링을 무대·공연장과 같은 비중(46.2%)으로 꼽았다. 수도권 응답자들이 무대(66%)를 멘토링(35.8%)보다 훨씬 앞세운 것과 대비된다. 지역 래퍼에게는 무대만큼이나 사람과의 연결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그냥 사람이 없다”고 했던 광주·전라 지역의 한 래퍼는 하고 싶은 말을 묻는 마지막 문항에 이렇게 적었다. “친구 좀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