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커닝의 ‘진화’

2000년대 초 ‘커닝의 5도(道)’라는 우스개가 유행했다. 들킨 친구를 진심으로 안쓰러워하는 인(仁), 누가 보여줬는지를 끝까지 밝히지 않는 의(義), 답을 보여준 친구보다 점수가 높아선 안 된다는 예(禮), 들키지 않는 자리와 감독관의 습성을 미리 간파하는 지(智), 답이 아무리 이상해도 의심 없이 받아쓰는 신(信)이 그것이다. 시험 부정행위(커닝)가 근절되지 않는 세태를 꼬집는 풍자다.

 

커닝에는 동서고금의 구분이 없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커닝은 횡행했다. 경전을 몰래 들여와 답안을 베끼는 협서(挾書), 남의 글을 자신의 답안인 양 제출하는 차작(借作) 등 수법이 다양했다. 시험장과 연결되도록 묻어 놓은 대통 안의 줄을 통해 문제지를 전달받고 밖에서 답을 작성해 들여보내려다 들켰다는 기록도 전한다. 경국대전은 곤장 100대와 도형 3년이라는 엄벌을 규정했으나 과거시험 부정행위 근절에는 역부족이었다.

 

중국 명·청나라의 양심불량 수험생들은 사서오경을 쌀알만 한 글씨로 베껴 쓴 초소형 책자를 옷이나 신발 속에 숨겨 시험장에 들어갔다. 2017년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 공개된 소형 커닝책은 성냥갑보다 조금 큰 크기였다. 2004년 영국에서는 대학 입학 자격시험 문제지가 도난당해 장당 최대 1000파운드에 거래될 뻔했다. 공부벌레라는 미국 하버드대 학생들조차 커닝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2012년 학생 125명이 재택시험에서 이메일, 휴대전화로 정보를 교환하며 답안을 작성했다가 60여명이 정학처분을 받았다. 명문대의 명성이 곧 학생들의 정직과 양심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커닝은 종이 쪽지에서 휴대전화·무선통신기 활용을 거쳐 인공지능(AI)을 동원하는 수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연세대와 서울시립대 수시 수학·과학 논술 시험에서 수험생들이 스마트 안경(AI 글라스)을 쓰고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됐다. 국어·사회 논술과 달리 수학·과학은 풀이 과정이 단순하고 답이 숫자로 나오기 때문에 스마트 안경을 사용했다고 한다. 커닝은 노력 없이 성과를 내는 행위라는 점에서 도둑질과 진배없다. AI 글라스를 악용한 커닝의 진화가 우리 사회의 공정한 경쟁이라는 가치를 더욱 훼손하지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