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도 관객도… 그곳엔 없다 [탐사기획-한국힙합 홍대에서 BTS까지]

<3> 동료가 떠나간 ‘길’

힙합성지 부산 ‘똥다리’ 등
지역래퍼 거점 줄줄이 사라져
“지방 활동 무대 소멸 위기”

흥 식은 ‘빈 거리’
행인 눈치 볼 필요 없던 우리만의 무대
정비사업으로 사라져

냄새가 사라져 있었다. 부산 금정구 지하철 1호선 부산대역 아래, 온천천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교각 옆 다리 밑으로 내려서며 프리스타일 래퍼 와일즈원(본명 박정민·35)은 걸음을 멈췄다. 하수가 흘러들어 코를 찌르던 악취 때문에 ‘똥다리’로 불리던 곳이다. 1990년대 말 사람들은 이곳을 피해 다녔고, 그래서 랩을 하는 아이들이 모였다.

 

그때는 두 사람이 걷기도 빠듯한 철제 계단으로 하천에 내려갔다. 지금은 유모차와 자전거가 나란히 오가는 넓은 경사로가 생겼다. 벽을 뒤덮은 그래피티는 거리 화가들의 캔버스였고, 그 아래서는 매주 원을 그리고 서서 즉흥으로 랩을 주고받는 ‘사이퍼’가 열렸다. 2011년 구청이 하천 정비를 이유로 그림을 타일로 덮었고, 정비가 이어지는 사이 철제 계단은 헐리고 물은 맑아졌다. 냄새가 사라지자 랩도 사라졌다. 8월24일 오후 3시, 회색 벽 앞에 선 와일즈원은 “냄새가 안 나네요”라고 했다.

 

지역 소멸은 인구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통계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이 있다. 지역문화다. 청년들이 모이던 자리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서던 사람들이 떠나거나 그만두고, 마지막엔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마저 사라진다. 제2의 도시 부산에서조차 이 과정은 이미 끝자락에 와 있다. 세계일보가 지난 석 달간 부산·대구·전남광주·제주·의정부 등에서 래퍼와 라이브클럽 운영자, 음악창작소 관계자 등 47명을 만났다. 같은 일이 지금 전국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와일즈원은 이 다리 아래에서 원을 그리던 사람이었다. 2008년 고교 친구들과 힙합 크루 ‘야생본능’을 만든 그는 2009년부터 7년 넘게 매주 이곳에 나왔다. 그는 “이 문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열 명에서 많게는 스무 명까지 모였다. 하천 냄새가 지독할 때였다”고 회상했다. 이제 다리 밑에는 원을 그릴 사람이 없다. 사람들은 수년째 그에게 언제 사이퍼를 다시 여느냐고 묻는다.

 

와일즈원은 “사람들이 연다고 하면 홍보하고 돕겠다고 했는데, 아무도 안 나선다”고 말했다.

 

전국에 이런 빈자리가 많다. 1990년대 말 힙합은 전국 청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PC통신 동호회와 소모임이 지역마다 생겨났고 공원과 다리 밑, 대학가 뒷골목에서 사이퍼가 열렸다. 서울 홍대의 놀이터와 윗잔다리공원, 대구 국채보상공원, 광주 금남로가 그랬다. 지금은 대부분 명맥이 끊겼다.

 

지방 래퍼에게는 설 무대도, 함께할 동료도, 들어줄 관객도 없다.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과정 송재홍이 석사논문 ‘지방도시에서 래퍼로 살아가기’(2022)에서 요약한 지방 래퍼의 삶이다. 그는 “지역 씬(음악인과 팬이 이루는 활동 무대)에는 제도가 없다 보니 사람 하나하나가 사실상 제도”라며 “젊은 래퍼들의 공백이 엄청나게 크다”고 했다. 광주 래퍼 MC퀘이사(전준성·35)는 2023년 미국 힙합 탄생 50주년을 맞아 광주 래퍼 50명이 참여한 단체곡을 만들었다. 그는 “지금은 현역이 10명도 안 남았을 것”이라며 “대학 가면 절반이 그만두고, 남은 절반의 90%가 군대 다녀와서, 살아남은 10%가 취업하면서 또 그만둔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 조선대 후문의 카페 ‘에스프레소렉’은 16년째 광주 힙합 동아리의 거점이다. 쇼미더머니가 한창이던 시절엔 동아리 공연에도 관객이 100명 넘게 몰려 낮 12시부터 줄을 섰다. 김동혁(47) 대표는 카페 뒤편 작은 방을 래퍼들의 작업실로 내줬지만, 그 방도 내년 1월이면 사라진다. 김 대표는 “음악하던 애들이 30살 넘어가니 취업하느라 서울 가고, 결혼 준비하느라 다 빠졌다”며 “남은 한두 명이 감당하기엔 월세가 너무 많다”고 털어놨다.

 

광주에서 10년간 라이브클럽 ‘네버마인드’를 운영하고 광주음악창작소 총감독을 지낸 남유진(54) 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은 “씬은 뮤지션뿐 아니라 기획자, 엔지니어, 평론까지 있어야 풍성해지는데 지역엔 다 없다”며 “그나마 라이브클럽이 그 역할을 하려 하지만 클럽 자체가 적자를 보는 공간이고, 공공이 잣대를 대면 한순간에 멈춘다”고 말했다.

 

부산 남구 경성대 앞 라이브클럽 ‘오방가르드’가 그랬다. 와일즈원이 지난 7월 섰던 이 무대는 일반음식점에서 손님이 춤을 췄다는 민원이 제기돼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8월 구청에서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음악인들은 법 개정을 요구하는 국회 청원을 냈다. 야생본능의 에이식(정승재·34)은 “한때 10개가 넘던 공연장이 이제 2~3개밖에 안 남았다”며 “남은 곳마저 없애면 문화를 없애겠다는 것밖에 더 되느냐”고 되물었다.

 

와일즈원이 올해 4월 낸 생애 첫 싱글의 제목은 ‘5만원만 주시면 바로 달려갑니다’이다. 3년 전 부산의 한 펍에서 겪은 일이 소재다. 유명 래퍼의 공연을 앞두고 앞 무대를 채울 대학 동아리와 랩 크루를 불러놓은 펍 주인은 “기회를 주는 거니까 페이(출연료) 말은 꺼내지도 마라. 음료 정도는 줄게”라고 했다. 와일즈원은 그 자리에서 랩으로 욕을 쏟아냈다.

 

무대가 절실한 지역 래퍼들은 지역 축제로도 눈을 돌린다. 울산 래퍼 빈세진(김세진·22)과 진우성(26)은 힙합을 받아줄 공연장이 마땅치 않아 80석 규모 인형극장을 빌려 공연하고, 기회가 생기면 한 달에 서너 번씩 서울을 오간다. 빈세진은 “갈 때마다 20만원씩 적자지만 울산 공연에서 채웠다”고 했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음악에 전념하는 진우성은 “음악을 포기하는 건 대부분 돈 문제 때문이지만, 얼마나 힘들지 알고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역 음악문화의 소멸을 막겠다며 내놓은 것이 음악창작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3년 서울 마포에 처음 세운 뒤 광주·부산을 거쳐 전국으로 넓혔고, 지금은 강원부터 제주까지 17곳이 운영된다. 개소 때 국비와 지방비를 1대1로 맞춰 최대 20억원을 시설에 넣었다. 비주류 음악의 지역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취지였지만, 지역별 나눠 먹기로 흐르면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사이 격차는 더 벌어졌다. 문체부 집계로 2024년 대중음악 공연의 70% 이상이 수도권에서 열렸다.

 

부산·광주 음악창작소를 비교 연구한 정우식 호서대 문화영상학부 교수는 “제도가 개인의 창작물은 지원할 수 있지만 씬은 지원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음반 하나 제작해 주면 끝이다. 음반을 낸다고 명성을 얻는 게 아니라 대다수는 잊힌다”며 “매년 새 사람을 뽑아 실적을 쌓는 수단이 됐다”고 비판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광주음악창작소를 맡았던 남 전 위원이 꿈꾼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는 “지역에서 음악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슨 음악을 하는지,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자꾸 어울릴 기회를 줘야 한다”며 “그걸 알아듣는 기획자가 안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창작소엔 예산 집행자 한 명뿐”이라고 지적했다. 창작소 수도 문제로 꼽았다. 그는 “홍대를 빼면 인디 씬이 있는 곳은 광주, 대구, 부산 정도인데 정책적으로 골고루 하다 보니 17곳을 만들었다”며 “5~6곳만 두고 질을 높였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2027년 대중음악 예산을 올해보다 38.5% 늘린 802억원으로 편성하고 인디음악 허브 80억원, 지역 인디음악 축제 30억원, 지역 공연 지원 113억원을 배정했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돈은 늘어난다. 문제는 그 돈이 다시 건수 위주로 집행될지다.

 

음악창작소는 불모지에서 붙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아줄이다. 부산 래퍼 배수정(32)은 음악을 배운 적이 없다. 케이팝(K-POP) 굿즈 매장 직원으로 생계를 잇는 그는 유튜브에서 산 비트에 가사를 써 2021년 첫 싱글을 냈다. 이후 부산음악창작소의 서울 프로듀서 매칭 프로그램에서 가수 현아, 그룹 아이들 등의 곡 작업에 참여한 프로듀서·작곡가 빅싼초(김태호)를 만나 2023년 1월 ‘블루 다이브’를 냈다. 빅싼초는 “지역에 잘하는 사람이 많아 놀랐는데, 특히 힙합은 날것의 느낌이 강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지역은 인프라와 프로모션 기회가 부족하다. 조금만 더 받쳐준다면 지역 뮤지션도 자기 색깔을 지키며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수정은 이듬해 빅싼초에게 다음 곡도 제안했지만 지원 사업에서 떨어져 성사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부산에 남을 생각이다. 배수정은 “서울에 살았으면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방황했을 것”이라며 “부산은 하고 싶은 걸 지속하게끔 숨 쉬게 해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섬은 문턱이 더 높다. 제주 랩코어(랩과 강렬한 록을 섞은 장르) 밴드 ‘감귤서리단’의 멤버 7명 중에는 은행원, 드럼학원 원장, 기타 강사가 있다. 한 달에 두세 번 서울 클럽 공연을 가려면 비행기 삯에 밥값, 숙박비까지 100만원을 훌쩍 넘길 때도 있다. 드러머 정승환(31)은 “학원에서 번 돈을 비행기 값으로 넣는 것”이라고 했다. 제주음악창작소의 교류 공연은 이들이 서울과 울산 뮤지션을 만나는 드문 통로였다.

 

정책이 닿지 않는 곳에서 씬을 지탱해 온 것은 사람이었다. 1999년 대구 대명동의 작은 클럽 ‘헤비’에서 시작된 힙합 공연 ‘힙합트레인’은 올해로 27년째다. 대구 출신 래퍼 마이노스(최민호·43)는 PC통신 게시판에서 알게 된 서울의 아마추어 래퍼들을 버스와 기차에 태워 대구로 불렀다. 래퍼 피타입, 더콰이엇, 팔로알토, 키비 등도 이 무대에 섰다. 1996년 문을 연 헤비의 신해원(55) 대표는 이 공연을 “명절에 타지에 살던 가족이 다 모여 잔치하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청년들은 더 작은 단위로 움직인다. 경기 의정부 래퍼 MC란자(오수환·31)는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붐박스(휴대용 스피커)를 들고 거리로 나간다. 그는 “어제는 사람이 안 와서 혼자 사이퍼를 했다”며 “꾸준히 남겨놓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2019년 지금은 없어진 의정부영상미디어센터 지원금 200만원으로 전국 힙합씬을 다큐멘터리 ‘마이크멘스탠리’에 담은 그는 “찍어 보니 예상보다 방대한 씬이 있었는데, 너무 쉽게 잊힌다”고 말했다.

 

물론 서울로 가는 이들이 훨씬 많다. 광주 래퍼 레슬리(이지원·25)는 재작년 광주음악창작소 제작지원 1등으로 데뷔 EP(미니앨범)를 냈다. 하지만 지역에선 버티기 어려웠다. 결국 한 달 전 서울에 방을 구했다. 그는 “서울은 경쟁이 치열하다지만 목표를 잡을 기회라도 있다”며 “광주엔 그게 없다”고 했다. 마이노스는 이 흐름을 “어쩔 수 없는 분위기”라고 부르며 “로컬 씬은 아티스트가 만든다기보다 그 도시 사람들의 응원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지역 힙합은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라는 반론도 있다. 정 교수는 “오프라인 장소에서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로 옮겨간 것이니 소멸이 아니라 이동”이라면서도 “온라인은 지역성을 없애버린다. 유튜브 담론은 결국 ‘대도시로 가야 한다’로 귀결된다”고 했다. MC란자의 답은 기록에 있다. 그는 “가게도 클럽도 레코드숍도 사라질 수 있다. 남은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와 기록을 남기느냐가 중요하다”며 “그게 남아 있으면 지역 힙합이 죽었다고까지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부산대역 똥다리 밑에서 와일즈원에게 다시 사이퍼를 열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이퍼는 판을 깔아 놓고도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그는 “이제 그런 실패를 마주할 용기 있는 친구가 없다”고 했다. 그 자신도 직장과 가족이 생긴 지금은 예전처럼 매주 다리 밑으로 출근하기 어렵다. 그는 “재미를 잃지 않아야 한다”며 “책임감으로 하게 된다고 느껴지는 순간 발걸음이 멈춘다”고 말했다. 9월5일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오랜만에 공연 후기가 올라왔다.

 

취재=조병욱·배주현·정세진 기자,

사진=최상수 기자, 편집=이대용 기자,

미술=권기현 기자

 

이 시리즈의 전 회차는 세계일보 인터랙티브 기사(www.segye.com/investigative/k-hiphop)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