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직설화법은 국정감사장을 매번 ‘정쟁(政爭)’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다. 의원 시절에는 송곳 질문으로 피감 기관들을 몰아붙이던 매서운 공격수였으나, 2020년 법무부 장관 시절에는 야당 의원들의 집중포화를 홀로 막아내며 ‘전투력’을 입증한 바 있다.
앞서 2017년 10월 여당 대표 시절에는 문재인 정부의 첫 국감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의 적폐 청산과 국정농단 규명을 기치로 내걸고 초선 의원들의 화력을 총동원했다.
1990년대 초선 의원 때는 판사 출신답게 송곳 질의로 검찰과 법원의 인권 침해 수사 관행을 비판해 호평받았다. ‘추다르크’라는 애칭을 얻은 계기였다.
◆의원 시절 직설화법…도지사 첫 국감에선 ‘미소’
추 지사가 13일 광역단체장 자격으로 첫 국정감사 무대에 올랐다. 여야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지만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감사장에선 취임 후 100일간 민생보다 중앙정치 이슈에 과도하게 몰입했다는 비판과 함께 도의 ‘재정 비상’ 선언의 적절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6선 의원 출신으로 20차례 넘게 국감을 치른 추 지사는 조목조목 입장을 개진하며 능숙하게 완급을 조절했다. 때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날 선 질의를 피해갔다.
복장부터 남달랐다. 청색 슈트에 넓은 흰색 셔츠를 받쳐 입은 추 지사는 이마를 살짝 드러냈다. 알이 큰 안경을 써 선명성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마치 전쟁터에 나선 무사 같은 결기가 느껴졌다. ‘카리스마’라고 불러야 할까.
왼쪽 손목에는 흰색 스마트워치가 채워져 있었다. 복고풍 의상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뒤지지 않는다’는 암묵적 포인트를 준 셈이다.
결과는 엇갈린 판정승.
이날 수원시 경기도청 남부청사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은 추 지사의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문제 삼았다. 김지용 중대범죄수사청장(중수청장) 후보자 지명을 둘러싸고 강도 높은 비판을 남발했다며 포문을 열었다.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취임 100일이 지났지만 지사의 SNS에는 저출생이나 복지 등 도민의 삶을 챙기는 단어보다 저격 글이 빈번하다”며 “1400만 도민이 맡긴 살림을 내팽개치고 중앙정치판을 기웃거린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박 의원은 추 지사 취임 후 작성된 SNS 게시글 82건 중 김 후보자 비판이 8건, 검찰개혁 등 중앙정치 관련이 14건에 달한다며 구체적 지표까지 제시했다.
같은 당 서명옥 의원 역시 중수청장 임명 지연 사태에 대한 추 지사의 책임을 물었다.
◆복고풍 의상에 스마트워치…“김지용은 친윤 맞아”
이에 추 지사는 “주말이나 퇴근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도리와 책임을 다하고자 개인적 의견을 피력했을 뿐, 도정에는 한 치의 소홀함도 없었다”며 “공식 유튜브 등을 통해 도정 현황이 모두 중계되는 만큼 도정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추 지사는 오후 질의에서 김 후보자에 대한 입장을 묻는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의 거듭된 질문에 “김 후보자는 친윤(친윤석열) 검사일 뿐만 아니라 공직자로서 그 자리에 부적합한 인물”이라며 소신을 꺾지 않았다. 이어 “알면서 침묵하는 건 역사적 과오가 되기에 양심에 따라 말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강명구 의원과는 설전을 벌이며 “(내일 김 후보자 인사) 청문회를 잘하고 싶으면 저를 증인으로 불러달라”고 맞받아쳤다.
여당에서도 추 지사에 대한 경고음이 잇따랐다. 더불어민주당 이광희 의원은 도가 시·군 보조사업 예산을 사전 협의 없이 삭감 통보한 점을 짚으며 “소통 없는 일방 독주”라고 질타했다. 같은 당 채현일 의원도 “갑작스러운 재정 비상선언으로 도민들이 혼란을 겪었다”며 행정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SNS에 ‘호의호식 고관대작’을 언급하며 서민 복지예산 삭감을 비판한 글을 두고도 신경전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대통령의 저격이 억울하지 않으냐”고 묻자 추 지사는 “나를 겨냥한 글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추 지사는 “나 역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사치하며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다”며 “언론의 숱한 오해 속에 사는 건 정치인의 숙명”이라고 덧붙였다.
◆“재정위기 맞나” 질의 이어져…“복지 부담 늘어”
이날 국감에선 재정위기 선언의 타당성과 인사 지연, 12억원대 관사 마련을 둘러싼 여야 의원들의 파상 공세도 이어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재정 난맥상의 원인으로 이 대통령 등 민주당 소속 전임 지사들의 선심성 정책을 꼽았다.
야당의 맹공에 민주당 일부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까지 합세하며 내부 비판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 채현일 의원은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을 인용하며 “경기도의 올해 2분기 채무 비율은 13.71%로 정부 기준 위기 단계가 아니었다”며 “비상선언으로 도민과 당 모두 당혹스럽다”고 꼬집었다.
같은 당 이해식 의원도 간부 공무원 인사 지연을 놓고 “직원들 가슴에 불을 댕겨 줘야 하는데, 지금은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1000여명의 운명이 달린 인사를 6개월 동안 미루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며 “지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하는데, 재정위기로 인사를 미루는 건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고 따져 물었다.
이 의원은 법인세 5%의 광역 지방세 이양 방안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기업이 많은 경기도에 세수가 집중되는 반면 인구 감소 지역의 재정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며 “지방교부세 재원인 내국세 규모도 줄어 다른 시도에 피해를 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추 지사는 전임 도정의 구조적 방치를 지적하며 배수진을 쳤다. 그는 “(민주당 이재명·김동연 지사 때인) 민선 7·8기를 거치며 쌓인 채무가 총 7조5000억원에 달하고, 취득세 수입은 급감했다”며 “2028년부터 원금 상환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고, (향후) 이자를 수조원씩 물어야 하는 상황이 위기가 아니라는 판단은 각자에 맡기겠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경기도는 불교부단체인 데다 도로·송전망 등 산업 기반시설 유지와 인구 증가에 따른 복지 재정 부담이 크다. 국가 위임사무가 늘어나는 만큼 세원도 함께 이양해야 하는데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대 3으로 조정하겠다는 국정과제에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친명 의원들 집중공세…“전임 지사 때 관용차 교체 결정”
추 지사는 여야 의원들의 거듭된 질의에 “세수가 3조~4조원 줄어든 상황에서 더 급한 민생 예산에 돈을 먼저 넣다 보니 공백이 생겼다”며 “지방세제 개편과 재정구조 혁신에 위원님들의 관심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경기도는 지난 4년간 인구가 30만명 이상,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는 무려 60만명이나 늘었다. 지난해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7만7000여 명의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했다. 출산과 보육까지 담당해야 할 복지 수요가 막대하다”고 설명했다.
인사 지연에 대해선 재정위기라는 비상 상황에서 업무의 연속성이 필요해 진단을 마친 내년 1월 이후 도의회 승인을 거쳐 인사를 낼 것이라고 답했다.
호화 관사 및 관용차 교체 논란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의힘 진종오 의원은 “재정위기를 말하며 12억원대 고액 관사와 고가 관용차를 마련한 건 내로남불”이라고 추궁했다. 추 지사는 “관사는 전세계약이라 종료 후 반환되고 가족과 함께 산다”며 “관용차 역시 내구연한이 지나 전임 지사 때 결정된 친환경차로 교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