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게 힙합의 힘… 사회 문제 대변·해법 제시 메신저 되길” [탐사기획-한국힙합 홍대에서 BTS까지]
기사입력 2026-10-14 19:00:00 기사수정 2026-10-14 16:54:10
<3> 국힙 30년 만든 ‘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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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래퍼 ‘가리온’ MC메타
“미국 래퍼 가사 20박스 읽고 찾은 답은 진짜다움… 그래서 우리말 랩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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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한국힙합을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고 하자 1세대 래퍼 MC메타(본명 이재현·55·사진)는 “분투”라고 답했다. 1998년 나찰(〃 정현일·49)과 힙합 듀오 가리온을 결성한 그가 보기에 요즘 래퍼들은 자신의 음악을 증명하려 매 순간 싸운다.
지난 7월14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지하 합주실에서 만난 메타는 “우리는 아무도 없는 데서 우리끼리 했으니 못해도 ‘넌 무가치해’라는 소리는 안 들은 행운의 세대였다”며 “지금은 모두가 잘하니 자신이 무가치하지 않다는 걸 어떻게든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힙합에 발을 들일 무렵엔 ‘무가치하다’는 시선이 래퍼 개개인이 아니라 장르 전체를 향했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통기타와 록, 헤비메탈을 거쳐 주한미군방송 AFKN에서 랩을 처음 만났다. 춤추는 음악은 음악도 아니라는 편견이 강하던 때라 리듬을 타기 좋았던 흑인음악은 몰래 들었다. 정보에 목말라 찾아간 곳이 PC통신 하이텔의 흑인음악 소모임 ‘소울 트레인’이다. 이곳은 뒤에 동호회 ‘검은소리’(Blex)로 이어졌다. 회원 아버지가 해외 출장길에 사 온 랩 음반 한 장이면 게시판의 스타가 됐고, 그 음반을 듣고자 200명이 음악감상회에 모이기도 했다.
홍익대 공대 대학원 졸업을 앞둔 1997년엔 외환위기가 터졌다. 학위를 따도 미래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힙합은 숨통이었다. 연구실 인터넷으로 미국 래퍼들의 인터뷰와 가사를 닥치는 대로 찾았다. 그렇게 모은 자료가 A4 용지 20박스. 그 안에서 발견한 답은 ‘진짜다움’이었다. 그는 “내가 누군지 알고, 솔직하게 드러내고, 자부심을 갖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시대상까지 담아낼 수 있다는 게 힙합이 가진 힘이다”고 했다. 우리말 랩의 기틀을 놓은 그가 대구 사투리로 쓴 ‘무까끼하이’(무식하게)도 이 고민에서 나왔다. 그는 “나는 한국인이고 모국어는 한국어이니 당연히 우리말로 랩해야겠다고 출발한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약 30년, 메타가 바라본 한국힙합은 어느덧 고유한 색깔을 갖춘 장르로 성장했다. 그는 “검은소리와 마스터플랜(신촌의 힙합 공연장) 시절엔 역사가 깊은 일본힙합이 부럽고 이기고 싶었다”며 “어느 순간 뒤집혔다. 시기마다 새로 등장한 젊은 뮤지션들이 그 역할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2001년 첫 해외 공연지인 홍콩에선 현지 젊은이가 한국어 랩의 공격적인 느낌과 타격감이 멋있다고 했다. 그는 “외국인 눈엔 한국 노래는 곧 케이팝(K-POP)이고 그 안에 힙합 지분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증명해야 하는 경쟁 속에서 요즘 청년들의 가사가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다고 그는 봤다. 플렉스(flex·자랑하다)도 시장 논리가 반영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본인 음악이 가진 가치와 그 음악으로 얻는 만족감, 궁극적으로는 행복을 추구하는 게 비굴하거나 구차한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분투는 그의 이력이기도 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이크를 쥔 청년들 얘기가 나오자 그는 자신의 30대를 꺼냈다. 2004년 1집을 낸 뒤 회사 사정으로 활동이 끊기자 신촌 세브란스병원 주차관리 일을 했고, 정직원이 돼 1년6개월간 월급을 받았다. 그는 “‘이런 삶도 괜찮네’ 싶던 차에 1집 제작자가 ‘2집 합시다’라고 연락해 온 순간 눌러 놨던 게 터졌다”고 털어놨다. 이때 돌아와 쓴 곡이 무장투쟁의 줄임말 ‘무투’다. 첫 소절에 담은 것은 변화였다. 그는 “변화는 늘 중요한 코드였다. 시대에 따라 변화의 옷을 갈아입으며 본질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리온은 스스로를 음반보다 무대가 먼저인 ‘라이브형 팀’이라 부른다. 2010년 2집과 2024년 3집 사이 14년의 공백에도 무대는 이어졌다. 3집을 낸 뒤엔 “굳어 있던 톱니바퀴가 돌아가니 계속 돌리자”며 곧장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힙합의 생일로 꼽히는 8월11일에 4집을 냈다. 인천음악창작소 음반 제작 지원사업에 힙합 음반이 선정된 첫 사례로, 11곡을 메타가 전부 프로듀싱했다.
취재=조병욱·배주현·정세진 기자,
사진=최상수 기자, 편집=이대용 기자,
미술=권기현 기자
이 시리즈의 전 회차는 세계일보 인터랙티브 기사(www.segye.com/investigative/k-hiphop)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