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은 나를 제멋대로 휘두르며 괴롭히고 있다. 나는 놈에게서 잔인무도한 힘을 보고, 그 힘을 더욱 북돋우는 헤아릴 수 없는 악의를 본다.”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해브에게 거대한 향유고래 ‘모비 딕’은 “모든 사악한 존재의 편집광적인 화신”이다. 더구나 그는 오래전 모비 딕을 잡으려다가 한쪽 다리까지 잃었다. 복수와 증오심으로 가득 찬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찾아 미 동부 뉴베드퍼드에서 출발해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쳐 태평양까지 내달린다. 그리하여 ‘아담 이후 지금까지 모든 인류가 느껴온 분노와 증오의 총량’을 폭발시키려 한다.
오랜 추격 끝에 에이해브와 동료들은 모비 딕을 발견하고 3일간 필사의 사투를 벌인다. 사흘째 되는 날, 에이해브는 마지막 작살을 던지지만 작살줄에 감겨 바다로 끌려들어가고 피쿼드호 역시 침몰하고 만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포경선 선장 에이해브가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모비 딕에게 복수하려다가 파멸로 치닫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고전이 된 ‘모비 딕’은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알려져 있다. 실제 그는 법무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학생들에게 이 책을 잇달아 선물해 화제가 됐다. 소설 문장도 자주 쓰곤 한다. 특히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내 배에 태우지 않겠다”라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의 말을 인용, 신중한 판단과 절제를 갖춘 용기를 강조했다. 실리를 중시하는 스타벅은 에이해브의 광기에 맞서 이의를 제기하지만 에이해브에 압도돼 무모한 항해를 묵인하는 인물.
6·3 재보선을 통해 원내에 입성한 한 의원은 무소속임에도 팩트에 기반한 이슈 파이팅으로 여의도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김승원 전 법무장관 후보자 논란이나 비무장지대 지뢰폭발 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슈 등에서 특유의 공세적 이슈 제기로 여론을 선도하고 있다. 반발이나 비판이 나오면 “팩트로 반박하라”며 물러서지 않는다. 언론은 ‘1인극 폭로정치’, ‘단기필마의 팩트전쟁’, ‘법가 정치’라고 부르며 주목했고, 여론도 출렁거렸다. 그는 차기 대통령 후보를 묻는 각종 조사에서 선두권에 올라 있다.
한 의원은 검사 출신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이슈 제기와 팩트 중심의 공세, 신속한 역공 등에서 강점이 분명하다. 12·3 비상계엄 당일 반대를 분명히 하고 적극 저지에 나선 것도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다. 보수 야권 내 경쟁 구도도 우호적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극우’ 이미지가 더욱 짙어졌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사법 리스크에 묶여 있다.
그럼에도 ‘한동훈 정치’의 지속성과 확장성에는 여러 의문이 붙는다. 당장 여권의 공세를 견뎌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9월 이후 비판논평을 무려 110건이나 쏟아내며 한 의원을 겨냥하고 있다. 한 의원은 정치적 세력이 약하고 풀뿌리 조직도 빈약하다. 특히 이슈에 정책이나 비전 제시가 아닌 공격적 대응으로 일관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 치명적이다. 자칫 ‘검사 정치’ ‘저격수 정치’ 이미지로 귀착될 수 있어서다. 지금의 모습에선 책 ‘국민이 먼저입니다’에서 정치적 지향으로 제시한 ‘성장하는 복지국가’라는 미래 비전은 전혀 읽히지 않는다.
결국 지난 4개월간 보여준 한동훈 정치는 그가 좋아한 스타벅이 아니라 “태양이 나를 모욕한다면 나는 태양이라도 공격하겠다”는 에이해브의 모습에 더 가까웠던 건 아닐까. 근저엔 에이해브가 죽이려 한 흰 고래 모비 딕은 과연 악의 화신이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정치를 대화와 타협, 상호 경쟁과 공존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에이해브의 유령은 여의도와 한 의원을 오랫동안 배회할지도.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너와 끝까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의 한복판에서 너를 찌르고,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증오를 담아서 뱉어주마…. 저주받을 고래여, 나는 너에게 묶인 채 너를 추적하면서 산산이 부서지겠다. 자, 이 창을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