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테러는 무력 공격뿐 아니라 사이버 공격과 정보전, 경제적 압박 등 다양한 수단을 결합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위다. 폭탄을 터뜨리고 인명을 살상하는 전통적 테러와 달리, 사회 시스템을 흔들어 공포와 혼란을 확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1980년대부터 무장조직을 유지하면서 사회복지사업과 정치활동을 병행해온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대표적 사례다. 2000년대 들어서는 군사력과 비군사적 수단을 결합하는 하이브리드전 개념도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하이브리드 공격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정체불명의 드론 출현부터 방화와 정전, 소셜미디어를 통한 여론 조작까지 수법도 다양하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 회원국을 표적으로 한 러시아의 공작 가능성이 점쳐진다. 최근에는 독일에서 공항과 전기설비, 방산업체 등을 겨냥한 공격이 잇따르면서 양국 간 외교 마찰이 커지고 있다.
이제 테러의 무대가 식탁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12일 프랑스 전역의 대형 유통매장 400여곳에서 냉장·냉동 설비를 겨냥한 대규모 사이버 공격이 발생했다. 해커들이 제어 시스템을 원격 조작하면서 일부 매장의 냉장고 온도가 섭씨 50도까지 치솟았다. 신선식품과 냉동식품은 대량 폐기됐고, 피해액은 수천만 유로에 이른다는 관측이 나왔다. 사이버 공격 한 번에 매장의 냉장 설비가 무력화되고 식품 공급망이 흔들린 것이다. 배후와 공격 목적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공격에 대비한 핵심 인프라 보호 조치를 지시한 직후 벌어진 일이라 의심은 러시아로 향한다.
사이버 공격은 이제 전력·금융망을 마비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식품의 보관과 유통을 교란하고, 국민 장바구니까지 위협한다. 식품에 직접 유해 물질을 넣지 않더라도 냉장·냉동 시스템을 무력화하면 막대한 식품 폐기와 경제적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 식품 안전과 사이버 보안, 국가 안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물인터넷(IoT) 기반 산업 인프라가 촘촘한 한국이다. 이런 테러가 현실화한다면 혼란은 불가피하다. 국민 식탁을 지키는 일도 국가 안보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