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에 AI 학습용 의심 도서 대량 구매 문의…출판계 대응 나서

국내 최대 서점 교보문고에 인공지능(AI) 학습용으로 의심되는 한국어 도서 대량 구매 문의가 잇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헌책에 이어 새 책까지 대량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출판계가 실태조사와 공동 대응에 나섰다.

 

15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미국·영국 등 해외 업체 약 10곳이 한국어 도서 구매를 문의했다. 이들은 특정 도서나 분야를 지정하지 않은 채 약 10만 종을 한 종당 한 권씩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해외 서점들이 통상 구매 도서 목록과 목적을 제시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교보문고 등 국내서점에 AI 학습용 도서 대량 구매 문의가 잇따르면서 출판계가 대응에 나섰다. 연합

교보문고가 구매 목적과 최종 납품처를 확인하려 했지만, 업체들은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일부 업체는 AI 학습용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최종 납품처가 데이터 관련 기업이라고 밝혔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내부 회의를 거쳐 AI 학습에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거래 논의를 중단했다”며 “앞으로도 최종 납품처와 활용 목적이 확인되지 않으면 거래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8월에는 예스24 중고서점과 서울책보고에도 미국 애리조나주 소재 업체 B사가 헌책 대량 매입을 문의했다. B사는 어린이 도서 등을 제외한 책을 구매하겠다며 전체 권수보다 서로 다른 도서의 종수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같은 책을 여러 권 확보하기보다 다양한 책을 수집하려는 방식으로, AI 학습용 데이터 확보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낳았다.

 

해외에서도 AI 학습용 도서 확보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도서 유통업체 잉그램은 올해 1월 출판사들에 AI 기업에 대한 도서 판매를 원하지 않을 경우 자사 도서를 판매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AI 기업들이 실물 도서를 대량 구매해 스캔한 뒤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는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일본에서는 도서 유통업체 닛판의 계열사가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에 일본어 도서를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출판계의 우려가 커졌다. 닛판 측은 당시 해당 도서가 AI 학습에 사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앤트로픽은 불법 복제 도서를 AI 학습에 활용했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작가들의 소송에 직면했다. 미국 법원은 지난해 6월 저작권이 있는 도서를 AI 학습에 활용하는 행위 자체는 공정 이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불법 복제 도서의 확보와 보관 문제는 별도로 다뤘다. 앤트로픽은 작가들과 15억달러 규모의 합의에 이르렀으며, 해당 합의는 지난 7월 법원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독일출판서점협회와 120여 개 출판사는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에 맞춰 ‘프랑크푸르트 호소문’을 발표하고, AI 학습에 사용된 저작물의 공개와 정당한 보상 체계 마련, 저작권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 강화를 촉구했다.

 

국내 출판계도 대응에 나섰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지난 13일 이사회에서 일반 서점과 중고서점, 도서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른 출판단체들과 협의체를 구성하고, 작가의 동의 없이 출판물을 AI 학습에 사용하는 데 반대하는 공동 성명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