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스토킹 잠정조치와 경찰의 안전 관리에도 전북 전주에서 70대 남성이 아내를 살해하면서 경찰 대응의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가정폭력과 스토킹 관련 신고가 8차례 접수됐지만, 가해자가 고령이고 구체적인 살해 협박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재범 위험성을 낮게 판단한 데다, 범행 추정 시간대 피해자의 안부 전화에 응답이 없었는데도 추가 확인에 나서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피해자가 스마트워치 지급을 거부한 경우를 포함해 안전조치 관리 대상자를 보호할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북경찰청은 아내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살인)로 남편 A(70대)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15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3일 오후 5시30분쯤 전주의 한 공동주택에서 아내 B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범행 다음 날인 14일 오후 5시쯤 “혈흔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숨진 B씨를 발견했다. 이후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해 추적에 나섰고, 신고 접수 3시간40분 만인 오후 8시40분쯤 충남 서천에서 경찰 공조로 A씨를 긴급체포했다.
A씨는 범행 뒤 집안 벽면에 붉은 글씨로 ‘부부싸움 일주일이면 화해한다. 경찰들이 살인 부추겼다. 내가 때렸는가’ 등 자신의 주장을 적고 차량을 이용해 전북과 충남 일대를 돌아다닌 것으로 파악됐다. A씨가 보낸 수십 건의 문자메시지에도 피해자에 대한 원망과 재산 분할 관련 내용, 욕설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토대로 범행이 지난 13일 오후 6시쯤 이뤄진 것으로 추정한다.
경찰에 따르면 재혼 부부인 A씨와 B씨는 지난 4월 말부터 별거하며 이혼 소송과 재산 분할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었다. 경찰에는 절도와 가정폭력, 위험 방지, 귀가 동행 요청, 스토킹 상담 등 관련 신고가 모두 8차례 접수됐다. B씨는 7월 귀가할 때 두렵다며 경찰에 동행을 요청했고, 9월에는 A씨가 문자메시지를 반복해서 보내자 스토킹 신고를 했다.
A씨는 범행 당시 법원으로부터 B씨에 대한 스토킹 잠정조치 1~3호를 모두 받은 상태였다. 잠정조치 1호는 스토킹 행위 중단을 경고하는 서면 경고, 2호는 피해자와 가족 주변 100m 이내 접근 금지, 3호는 전화·문자메시지 등 전기통신을 이용한 연락 금지다. A씨는 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당시 전자장치 부착이나 신체 구속 조치는 신청하지 않았다. 스토킹이 주로 문자메시지로 이뤄졌고 구체적인 살해 협박이나 직접적인 신체 폭행이 확인되지 않은 데다 A씨가 고령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재범 위험성을 낮게 판단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A씨는 아내와 분리된 상태였지만, 잠정조치를 어기고 집을 찾아가 범행했다. 이전에도 부부 사이에서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되는 등 폭력 문제가 반복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의 사후 대응도 논란이다. B씨는 경찰의 안전조치 관리 대상자로 등록돼 주거지 순찰과 학대예방경찰관의 정기적인 전화 모니터링을 받고 있었다. 이에 관할 경찰서 소속 담당 수사관이 1주일에 한 번씩 피해자의 안전을 확인했으며, 지난달 29일과 이달 6일에도 확인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하지만, 범행 추정 시간대인 13일 오후 5시43분쯤 경찰이 건 안부 전화에 B씨가 응답하지 않았는데도 추가 연락이나 주거지 방문을 통한 안전 확인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담당 직원이 재차 연락했는지, 상급자에게 보고했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
긴급신고용 스마트워치가 지급되지 않은 점도 쟁점이다. 경찰은 “B씨가 지급에 동의하지 않아 제공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지만, 반복된 폭력과 스토킹으로 위험이 누적된 경우 스마트워치 지급 거부를 대체할 보호 방안이 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기적인 전화 확인과 순찰이 실제 위험 상황에서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지도 점검 대상이다.
박한호 원광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스마트워치 등 보호 수단을 이용하지 않는 피해자를 위해 고위험 범죄피해자 민간경호 지원사업을 확대하고 고위험 가해자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며 “영국의 다기관 공공보호 관리제도(MAPPA)처럼 경찰·보호관찰소 등 관계 기관의 공조를 강화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범죄 징후 예측 체계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