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내러티브의 극명한 차이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딱 잘라 정의할 수 없어도 넷플릭스 시리즈 ‘내 안의 괴물’에서 여러 인물을 지켜보건대 거짓말로 누군가를 속이려면 서사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픽션의 서사 역시 개연성을 가진 허구라는 점에서 거짓말과 서사는 상호 침투적이다.
부촌에 은둔해 살고 있는 작가 애거서 위그스(클레어 데인즈)의 이웃집에 자수성가한 기업가 나일 자비스(매슈 리스)가 이사를 온다. 나일은 과거 전 부인을 죽였다는 의심을 받았고, 여전히 의심받고 있는 오명 속의 유명인이다. 선지급된 새 작품의 계약금을 모두 써버린 애거서는 무엇이든 창작해야 하지만 원고는 막다른 지경에 이르렀다. 나일은 애거서에게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쓰라고 제안하고 애거서는 마을 청년 테디 페니그의 실종 사건을 계기로 나일에 대한 글쓰기에 착수한다. 테디 페니그의 실종에 나일이 깊이 연루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뿌리 깊은 의심에 의해서다.
애거서는 작가로서 글쓰기 대상인 나일과 그의 주변 인물을 인터뷰해 나간다. 작가와 독자, 작가와 글쓰기 대상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영화에서 관건은 주로 누가 서사를 지배하느냐에 있다. ‘미저리’는 폴이 완결 낸 인기 소설의 결말을 독자인 애니가 바꾸려 하며 전복된 작가-독자의 관계를 그리고 ‘살인자의 건강법’은 대문호 프레텍스타 타슈가 지어낸 견고한 개연성의 서사를 인터뷰어인 니나가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다룬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작가와 밀접한 또 다른 서사 구현자는 작가로부터 서사를 지배할 권한을 가져옴으로써 우위를 점한다. 애거서는 나일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여러 차례 작가의 지위를 잃는다. 쓰는 자와 쓰이는 자가 서로를 자신의 서사 안에 가두려 하는 이 줄다리기에서 쟁점은 누가 더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이야기가 더 그럴듯하냐에 있다.
‘내 안의 괴물’은 작가와 글쓰기 대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서사의 권력 구도보다 한층 더 오묘한 지점으로 들어선다. 선악의 명료한 구분은 현대 서사에서 거의 쓸모가 없다. 그럼에도 시학에서처럼 인물을 덕과 악덕에 따라 구분한다면 나일은 악인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애거서는 악인도 선인도 아닌 그저 죄책감에 시달리는 범인(凡人)이다. 애거서를 선인이 아니라 범인의 위치에 내려놓은 이유는 그가 자신의 과오를 끝없이 되짚고 스스로를 책망하면서도 그 나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이어서다. 나일은 선한 의지를 믿지 않으면서 애거서를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려 하기에 악인이다. 인간의 마음을 들끓는 증오와 적개심, 의심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일에게 애거서 안에서 비롯된 평범한 불안과 혼란, 나약함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에게 타인의 선함이란 순진한 착각이거나 위선에 불과하다. 악인은 결코 선인을 상상하지 못한다.
유선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