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배출한 천재로 정평난 저자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물리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측정과 양자물리학의 비통일성’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세계적 과학철학자다. ‘온도계의 철학’과 ‘물은 H₂O인가?’ 등의 베스트셀러로 대중에게 과학 지식의 토대를 해설한 저술가이기도 하다.
현재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인 저자는 이번에는 ‘과학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장하석 지음/흐름출판/2만5000원
우리는 흔히 ‘과학적’이라는 표현을 정확하고 확실하다는 뜻으로 쓴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완성된 지식보다 그것을 얻고 고쳐나가는 태도다. 과학하는 마음은 끝없이 배우려는 자세에서 출발한다. “내가 다 안다”는 오만을 내려놓고 아직 모르는 것이 무한히 있음을 받아들이는 겸허함이다.
이 겸허함은 기존 지식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발견을 받아들이게 한다. 대를 이어 쌓아온 지식을 함부로 배척해서도 안 되지만 이미 알고 있다는 이유로 변화를 거부해서도 안 된다. 19세기 말 “물리학에서 큰 발견은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반성해야했다. “그럼에도 옛 이론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과학자들은 또 다른 겸허함을 배웠다.
그렇다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과학 지식을 왜 믿어야 할까. 저자는 ‘잠정적 신뢰’를 이야기한다. 과학자와 과학 이론에 대한 믿음은 새로운 증거에 따라 수정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과학의 권위는 “오류가 없다”는 선언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류를 드러내고 검증하면서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지식을 만들어가는 데서 생긴다.
신간은 최근 6년간 저자가 쓴 칼럼을 가다듬어 엮은 첫 산문집이다. 코로나19 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과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 등 대격변의 시기를 통과중인 과학철학자의 사유가 담겼다. 일상 속 사물과 과학사의 장면을 짚다가 기후변화와 기술 규제 같은 쟁점으로 나아간다. 과학 발전에 기여하고도 충분히 기억되지 못한 여성 과학자와 장인들에게도 눈길을 준다.
AI 시대를 향한 조언도 명료하게 제시된다. AI가 번역을 잘한다고 해서 외국어를 배우는 경험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낯선 언어를 익히며 다른 사고방식을 만나고 자기 생각을 넓히는 일은 여전히 인간 몫이다. 모든 것을 맡기면 직접 경험하며 배울 기회도 잃는다.
“(기술은)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겼던 곳들을 계속 침범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래도 인간만이 가진 능력과 인간이 직접 해야만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따분하고 피곤한 일이지만 그런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포기한다면 인간은 그야말로 기술의 노예가 될 것이다.”
익숙한 현상에 질문을 던지고 자기 판단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과학 교양서이자 삶의 태도를 다룬 산문집이다. 과학철학자의 통찰을 일상 언어로 풀어낸 문장이 편안하게 읽힌다. 책이 권하는 것은 더 많이 아는 데 그치지 않고 계속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