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친일파 글씨 박물관 전시, 소장자가 유홍준 관장이라니

국립중앙박물관이 애국지사의 작품으로 소개했다가 친일파 박중양의 유묵으로 확인돼 철거한 유물이 유홍준 관장의 개인 소장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물관은 어제 “해당 작품의 소장자는 유 관장”이라고 밝혔다. 유 관장이 직접 전시를 추천했고, 박물관은 그의 설명 등을 토대로 독립운동가 박원근의 유묵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황당할 따름이다.

이번 사건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품 검증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의 유묵은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에서 소개됐던 ‘한 그릇의 밥도 나라의 은혜’라는 뜻의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이다. 박물관은 이 글씨를 쓴 박중양이 한때 박원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족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친일파의 글씨가 여전히 애국지사의 작품으로 둔갑해 전시됐을 것이다.



전시 유물의 진위와 역사적 배경을 확인하는 것은 박물관의 기본 책무다. 그런데도 박물관은 소장자이자 추천자인 유 관장의 설명만 믿고 유묵의 필체와 인물 이력 등에 대한 전문가 교차 검증을 소홀히 했다. 유 관장은 한국 문화유산의 가치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기여해 온 전문가다. 이런 유 관장의 권위 탓에 검증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 아닌가.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8월까지 525만명이 다녀간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 명소다. 한국 역사와 문화를 배우려는 외국인 관람객도 29만명을 넘어 전년 동기 대비 두 배에 육박한다. 이런 곳에서 친일파의 글씨를 버젓이 전시했다니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전시품의 검증 절차에도 문제가 없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유 관장은 지난달 10일 이번 착오 전시에 대해 “유물의 정확한 의미를 읽지 못한 것은 역량 부족이자 실수”라며 사과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해당 유묵의 소장자라는 사실에는 입을 다물었다. 유 관장은 작품 입수 경위부터 전시 추천과 검증 과정까지 소상히 밝힐 필요가 있다. 특히 박물관의 권위를 실추시킨 책임을 무겁게 져야 한다. 전시품 선정과 검증체계의 빈틈을 메우는 박물관의 재발 방지책 마련도 급선무다. 역사적 진실을 지켜야 할 국가기관이 도리어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