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론·고금리 공포… 외국인 이탈·반대매매 쏟아졌다 [증시 '검은 목요일']

코스피·코스닥 7%대 급락 마감
AI 수익성 의구심… 신용위험 ↑
고유가 속 예상 웃돈 美 CPI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
내년에도 긴축기조 지속 전망

한국 ‘창신 리스크’에 더 충격
중·일·대만보다 낙폭 곱절 넘어
10월 말 빅테크기업 실적 관건
美금리 향방·중간선거가 분수령

국내 증시가 15일 폭락한 것은 미국발 물가 충격이 촉발한 고금리 공포가 인공지능(AI) 산업을 둘러싼 의구심을 재차 자극한 결과로 풀이된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이를 상회하는 수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 AI 기업의 신용 위험이 불거졌다. 국내에선 외국인 자금 이탈과 반대매매 물량이 쏟아지며 유독 가파른 낙폭을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이달 말부터 이어지는 미국의 빅테크 실적과 금리 향방, 중간선거 결과가 증시 반등 여부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5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는 9.48%. SK하이닉스는 11.06% 폭락해 7월28일(각 -13.39%, -16.02%)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고금리가 건드린 AI 수익성·신용 리스크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국내외 증시를 덮친 투매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였다. 9월 CPI가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하며 시장 전망치(3.6%)를 웃돌았고 전월 대비로는 0.6% 올라, 5개월 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에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세가 서비스 물가 전반으로 번지면서 연내 추가 금리인상은 물론 내년까지 긴축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계감이 확산했다.

 

현대차증권 최제민 연구원은 “CPI 발표 이후 연내 최소 한 차례 인상 확률은 95%를 넘어섰고 10월 인상 확률도 53.7%로 급등했다”며 “10년물 실질금리가 3% 부근까지 올라 금융여건이 이미 상당히 긴축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고금리 장기화 우려는 대규모 차입에 의존해 온 AI 인프라 기업의 취약한 고리를 건드렸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가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관련 매출이 투자비 회수 기준을 크게 밑돌아 AI 클라우드 기업의 80% 이상이 독자 생존에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수익성 논란을 키웠다. 특히 대규모 차입으로 사업을 확장해 온 AI 인프라 기업 코어위브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고 주가가 15.46% 폭락한 점이 기술주 전반의 투매를 부추겼다.

 

기대를 모았던 앤트로픽의 실적도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앤트로픽은 3분기 매출이 168억달러(약 22조5000억원)로 성장세를 이어갔으나 1분기(47억달러)·2분기(116억달러)와 달리 성장률이 둔화했다는 점에서 시장 눈높이를 밑돌았다. AI 수익성 의구심이 시장에 누적된 상황에서, 업계 선두 주자로 꼽히는 앤트로픽마저 시장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자 충격이 증폭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외 악재 속에서 유독 한국 증시의 충격이 컸다. 간밤 뉴욕증시는 나스닥 지수 1.88%를 비롯해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도 4.30% 빠졌으나 국내 증시에 비해 낙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이날 일본 닛케이255지수(-4.90%), 대만 가권지수(-3.41%), 중국 상하이종합지수(-1.59%) 등 아시아 주요국 증시와 비교해도 한국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약진 등 메모리 공급 확대 우려가 겹친 데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쏠림 현상이 지수 전체의 변동성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수급 공백·반대매매가 키운 낙폭

 

취약해진 국내 수급 구조도 하락 압력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동안 지수 하단을 지탱하던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이 마무리되면서 외국인의 순매도 공세를 받아낼 안전판이 사라졌다. 삼성증권 조아인 연구원은 “외국인의 한국 증시 매도세 속 기관과 개인의 매수 여력도 제한되면서 수급 공백이 확대되고 있다”며 “외국인 매도 물량을 받아낼 매수 주체가 부족해 외국인 매도 시 지수의 낙폭이 더욱 커지는 모습”이라고 짚었다.

 

개인투자자들의 ‘빚투’(빚내서 투자)와 반대매매도 하락의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이달 들어 개인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7조원 넘게 순매수하는 등 저가 매수에 나섰고 신용융자거래 잔고는 14일 기준 33조원대로 불어났다. 하지만 지수가 연일 급락하자 주식이 강제 청산되는 반대매매 규모가 이달 초 60억∼200억원대 수준에서 14일 893억원으로 치솟았다. 초단기 빚투 지표인 위탁매매 미수금 역시 1조3574억원으로 급증해 추가 반대매매 물량이 쏟아질 위험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바닥을 예단하기보다 신용위험 지표와 물가 흐름을 확인하며 위험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당장 15일(현지시간) 발표되는 미국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와 소매판매 지표가 인플레이션 우려를 진정시킬지가 1차 관건이다.

 

메리츠증권 황수욱 연구원은 “일차적으로 주요 기업 CDS 프리미엄의 상승 랠리가 꺾이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지난 2분기에도 CDS 프리미엄 우려가 부각됐지만 실적 시즌에서 우려가 불식되며 시장이 반등했다”고 말했다.

 

증시의 추세적 반등을 판가름할 변곡점으로는 빅테크 실적 발표와 27∼28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다음달 초 미국 중간선거가 꼽힌다. 메타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의 3분기 실적을 통해 AI 수익성 논란이 해소되고 통화정책과 선거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걷혀야 대기 자금이 다시 유입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