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경남 창원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6년 넘게 옥살이를 해온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외국인이 당시 경찰의 강압 수사와 위법 행위가 인정돼 재심을 통해 다시 유‧무죄를 다투게 됐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된 지 16년6개월여만이다. 창원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김성환 부장판사)는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복역 중인 보조로브 아크말(37)씨가 제기한 재심 청구 사건에서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아울러 재심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아크말씨에 대한 형의 집행을 정지하기로 했다.
이 사건은 2009년 3월24일 창원시 동읍 석산리 농로 및 명서동 일대에서 발생했다.
당시 50대 택시기사가 흉기 등에 공격을 받아 숨진 채 발견됐고, 범인을 특정할 객관적 단서가 부족해 수사가 난항을 겪었다.
같은 해 7월 발생한 또 다른 택시 강도 사건 용의자로 당시 만 19세였던 아크말씨 등이 체포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고, 경찰은 아크말씨를 3월 택시기사 살인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아크말씨는 수사기관에서 범행을 자백했으나 이후 경찰의 가혹행위와 위법 수사로 인한 허위 자백이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2010년 4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고, 2015년 첫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이후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2025년 1월 다시 재심을 청구하며 법적 공방을 이어왔다.
법원은 이번 재심 청구 심리 과정에서 당시 경찰의 수사 행태에 중대한 위법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창원중부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객관적 증거가 없음에도 “현장에서 피고인의 DNA가 검출됐다”고 속이거나 이미 사망한 피해자가 “살아 있다”며 속인 사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재심 결정문을 통해 “당시 19세의 어린 외국인 피의자에게 이 같은 경찰의 기망 행위는 범행을 부인하기 어렵거나 부인해도 소용없다고 느끼게 할 정도로 심리적으로 와해시켜 임의성 없는 자백을 유도한 것”이라며 “헌법과 형사소송법상 진술거부권을 보장하는 규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위법·부당한 직무행위이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국어 능력이 부족한 아크말씨를 상대로 수사 초기 단계에서 통역인을 참여시키지 않은 채 조사를 벌인 점도 통역 받을 권리를 침해한 위법 수사로 지적됐다.
경찰은 피의자신문 및 비공식 실황조사 등에서 통역을 배제한 채 최초 자백을 받아냈는데, 이것이 기소와 유죄 판결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수사관의 직권남용 등 직무에 관한 죄에 대해 공소시효가 완성돼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는 때에는 재심사유가 된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강도살인죄 및 무면허운전죄에 재심사유가 인정되며, 유죄로 인정된 다른 죄들과 경합범 관계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에 아크말씨에 대한 재심대상판결 전부에 대해 재심 개시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이번 재심 개시 결정으로 아크말씨는 무기징역 확정 후 16년 만에 다시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가리게 됐다.
검찰의 즉시 항고 여부에 따라 확정 절차가 남았으며, 향후 본안 재판에서는 새로 제출된 법의학 의견서 및 객관적 증거들과 자백 간의 모순점 등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선고 직후 박준영 변호사는 “거짓 자백 내용과 객관적·과학적 증거 사이에 모순이 많았다”며 “본격적인 재심 절차에서 수사 과정 문제점을 밝히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