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권준영 기자] 프로농구 서울 삼성의 시즌 초반은 ‘반전 드라마’ 그 자체다. 5시즌 연속 정규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던 팀이 개막 4연승을 질주하며 코트를 뒤흔들고 있다. 한때 12점 차까지 밀렸던 창원 LG전에서도 끝내 승부를 뒤집었다. 케렘 칸터의 압도적인 득점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다. 선수들이 서로를 믿고 위기를 버텨내면서 오랜 부진을 겪은 팀에 승리를 향한 자신감이 싹트고 있다.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삼성은 15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6~2027시즌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 홈경기에서 LG를 93-86으로 꺾었다. 수원 KT와 안양 정관장, 고양 소노에 이어 LG까지 제압하며 개막 4연승을 완성했다. 삼성이 개막 4연승을 거둔 것은 2003~2004시즌 이후 23년 만이다. 구단 역사상 다섯 번째 개막 4연승이자 LG전 9연패를 끊어낸 승리이기도 하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김 감독은 “지난 경기들에서 끝까지 쫓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며 “선수들이 너무 잘해줬다”고 공을 돌렸다. 이어 “점수 차가 벌어지고 따라가는 과정에서 선수들끼리 모여 대화하고, 제가 놓쳤던 부분을 오히려 말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팀이 달라졌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면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이 소통하면서 똘똘 뭉치는 문화를 팀에 정착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2021~2022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5시즌 연속 정규리그 10위에 그쳤다. 올 시즌 개막 전에도 전력상 큰 도약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감독 선임이 늦어진 데다 새 외국인 선수 크리스 맥컬러를 둘러싼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삼성은 개막 이후 차례로 승리를 쌓으며 이런 평가를 뒤집고 있다.
이날 경기는 삼성의 저력과 보완 과제를 동시에 보여줬다. 출발은 좋았다. 칸터가 1쿼터에만 14점을 몰아넣으며 골밑을 공략했고, 삼성은 22-21로 앞선 채 첫 쿼터를 마쳤다. 그러나 2쿼터 들어 아셈 마레이가 안구 부상으로 빠진 LG를 상대로도 주도권을 지키지 못했다. 아치 굿윈과 칼 타마요의 공격에 밀린 데다 상대 돌파를 의식한 수비가 외곽으로 이어지는 패스와 슛을 제어하지 못하면서 한때 12점 차까지 뒤처졌다.
삼성은 3쿼터 들어 반격의 고삐를 당겼다. 칸터가 해당 쿼터에만 17점을 쏟아부으며 공격을 이끌었고, 맥컬러도 힘을 보탰다. 삼성은 3쿼터를 29-16으로 앞서며 승부를 뒤집었다. 마지막 쿼터에도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지만, 승부처에서 베테랑 이관희와 이근휘의 외곽포가 잇따라 터지면서 리드를 지켜냈다.
김 감독은 마레이의 결장만으로 승리를 낙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레이가 없다고 해서 쉬운 경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선수들에게 2·3쿼터를 끝까지 버티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 같다”고 밝혔다. 상대의 전력 공백에 기대기보다 불리한 흐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승부를 뒤집었다는 데 의미를 둔 것이다.
다만 연승에 취하기에는 이르다. 삼성은 이날 LG에 3점슛 12개를 허용했고, 턴오버도 12개를 기록했다. 김 감독은 “LG는 3점슛이 강한 팀이라 투맨 게임을 통해 외곽슛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했다”며 “선수들이 상대 돌파를 너무 의식하다 보니 외곽 수비가 늦어진 부분이 있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턴오버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고 10~12개 정도는 나올 수 있지만, 그래도 줄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승부처에서 삼성의 승리를 이끈 또 다른 주역은 이관희였다. 그는 4쿼터에 3점슛 두 방을 포함해 10점을 몰아치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개인 통산 5900득점도 달성했다. 김 감독은 “해결사 능력이 있는 선수인 건 맞다”면서도 “중요한 순간에 욕심을 내는 경향이 있어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확실한 기회가 아니면 패스하고 찬스가 왔을 때 과감하게 던지라고 했는데 잘해줬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늘 승리의 원동력 중 하나가 이관희다. 다른 선수들도 모두 잘해줬다”고 덧붙였다.
이날 경기에서 가장 강렬한 활약을 펼친 선수는 단연 칸터였다. 37분 38초를 뛴 그는 42점 14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득점과 리바운드 모두 개인 한 경기 최다 기록이다. 골밑에서 적극적으로 득점 기회를 만들며 상대 수비를 흔들었고, 동료들의 움직임을 살리는 패스로 공격의 흐름도 이어갔다.
칸터는 경기 후 수훈 선수 기자회견에서 개인 기록보다 팀워크를 앞세웠다. 그는 “오늘 팀의 목표는 나에게 공을 주고 득점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며 “팀으로서 움직이고 하나로 뭉치지 않았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은 나의 날이었지만 다른 날에는 다른 선수가 그 역할을 할 것이다. 나는 그저 코트를 밟는 12명 중 한 명일 뿐”이라고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날 활약과 4연승에 대해서는 “이런 성적을 거두게 돼 정말 달콤한 4연승”이라고 웃었다.
칸터는 개막 4경기에서 평균 37분 15초를 소화하고 있다. 김 감독은 주축 선수의 체력 부담을 걱정하면서도 칸터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승부처에서 상대가 더블팀을 들어오면 외곽에 기회가 생기는데, 칸터가 계속 많은 시간을 뛰고 있어 미안하다”며 “아직 경기가 많이 남은 만큼 한호빈을 비롯한 주전 선수들의 출전 시간을 조절해야 하지만 연승 중이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작 칸터는 체력 부담을 일축했다. 그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장 과소평가하는 부분이 지구력”이라며 “오랜 시간 코트에 머물러도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어 “여름 내내 땀 흘리며 몸을 완벽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체력만큼은 자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지난 시즌 정규리그 1위인 LG는 부상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삼성의 연승 제물이 됐다. 마레이가 안구 부상으로 결장한 데다 주전 슈터 유기상까지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굿윈이 34점 7리바운드 3어시스트, 타마요가 24점 4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분전했다. 두 선수가 58점을 합작했지만, 골밑 열세와 승부처 수비 불안이 겹치면서 패배를 막지 못했다.
LG 조상현 감독은 “마레이가 없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경기를 잘 끌고 갔지만, 리바운드와 골밑 높이 싸움에서 밀렸다”며 “코트 위에서 구심점 역할을 해줄 선수가 없었던 점도 아쉽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올 시즌 외국인 선수 2명이 동시에 뛰는 경기 방식에 맞춰 수비 전술을 세밀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수비로 버텨왔지만, 올 시즌에는 수비 변화도 세밀하게 다시 다듬어야 할 것 같다”며 “칼 타마요나 양홍석이 상대 빅맨을 얼마나 제어해 주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격에서 스페이싱을 어떻게 가져갈지, 마레이가 없을 때 구심점 역할을 해줄 선수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선수들에게 그 부분을 더 잘 전달하고 수비도 세밀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