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dak 필름 한 롤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며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메라에 표시된 필름 카운터가 25 정도가 되면 고민이 시작됐다. 필름을 새걸로 갈아야 하나 남은 거로 찍어도 될까? 제한된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긴장감, 설렘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사진기자는 본인이 취재했던 사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관한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사진의 중요도를 떠나 보관을 많이 하는 사진기자이다.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상황이 기억도 없는 시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있고 취재와 출장 중에 보이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열어본 나의 외장하드를 독자들과 같이 꺼내보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1999년 8월 3일, 경기 연천군 '연천슈퍼' 간판 아래 흙물에 젖은 물건들이 무더기로 쌓였다. 홍삼차 상자와 과자 상자, 젖어 주저앉은 골판지, 깨진 유리가 붙은 철제 틀. 그 틈에 시든 꽃다발이 끼어 있다.
군복 바지에 흰 러닝셔츠나 녹색 티셔츠 차림의 육군 장병들이 가게 안에서 나무 선반과 사무용 의자를 들어 옮긴다. 발에는 군화를 신었고 목에는 군번줄이 걸렸다. 러닝셔츠에는 흙물이 튀었다. 가게 앞에 부려 놓은 옷가지 더미를 한 장병이 뒤적인다. 물에 잠겼던 가재도구를 정리하는 현장이다.
그해 7월 31일부터 사흘 동안 경기·강원 북부에 488~837㎜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경기 북부는 1996년과 1998년에 이어 또다시 물난리를 겪었다. 피해는 임진강 유역에 몰렸다. 8월 1일에는 한탄강의 소수력발전댐인 연천댐이 무너졌다. 1996년에 이은 두 번째 붕괴였고, 댐 붕괴는 연천 지역 수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됐다. 연천댐은 그해 10월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철거가 결정돼 이듬해 헐렸다. 임진강 유역에는 2010년 군남홍수조절지가, 2016년에는 한탄강 홍수조절댐이 들어섰다. 8월 3일 집계로 경기 북부의 농경지 1만8310㏊가 물에 잠겼다. 임진강 유역 6개 시·군의 홍수 피해액은 3900억원에 이르렀다.
같은 날 연천군 일대의 논 옆에서는 농민들이 무너진 비닐하우스를 걷어냈다. 노란 비옷 모자 위에 밀짚모자를 겹쳐 쓴 농민이 붉은 코팅장갑을 낀 팔을 뻗어 검은 비닐 뭉치를 던진다. 옆에서는 파란 비옷을 입은 이가 허리를 숙였다. 부러진 각목과 회색 파이프, 갈가리 찢긴 비닐이 쓰러진 철망 위에 얽혔다.
처참했던 그날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면 날씨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두 사진 모두 하얀 빗방울이 점점이 박혀 있다. 논에는 벼가 푸르게 자랐고 흰 팻말이 줄지어 꽂혀 있다. 그 너머 산 허리에는 안개가 걸렸다. 가게 유리문 안쪽으로는 벽시계와 선반, 빨간 플라스틱 의자가 보인다. 간판 옆 '담배' 표지판과 '주류' 글씨가 그 시절 동네 가게의 모습 그대로다.
가게에서는 장병들이 젖은 살림을 끌어냈고, 논밭에서는 농민들이 무너진 하우스를 걷어냈다. 복구는 빗속에서 이뤄졌다.
빗물 먹은 홍삼차 상자와 찢긴 비닐. 27년 전 연천의 필름에는 물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젖은 살림을 하나씩 들어 올리던 손들이 남아 있다. 잔인했던 1999년의 여름을 우리는 그렇게 이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