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낙점한 김지용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에 대해 지명 당시부터 강하게 ‘중수청장 불가’를 외치는 등 경기도정을 넘어 거침없는 정치적 행보를 보인 추미애 경기지사가 궁지에 몰린 형국이다. 이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주류의 견제구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그가 보편적 정서와 동떨어진 실언을 하는 바람에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추 지사가 고약한 상황에 놓인 건 지난 13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소방 재정과 관련한 언급에서 비롯됐다.
추 지사는 당시 소방재원 확충과 관련한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의원님 말씀처럼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 인건비만 하더라도 2027년도에 1조1000억원을 잡아먹게 되고, 사업비만 5000억원가량, 그러니까 국가직임에도 소방 인건비와 사업비를 합쳐 1조 7000억원이 나가게 된다”고 답변했다. 소방 예산에 대한 국비 지원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권 의원의 지적에 공감하면서,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후에도 재정을 광역자치단체가 대부분 부담하는 현실을 토로한 것이다.
지난 8월 ‘재정 비상 상황’을 선언할 만큼 심각한 경기도의 재정난 타개를 위해 애쓰고 있는 추 지사 입장에선 국가직인 소방공무원의 인건비와 사업비 상당 부분을 지방정부가 떠안는 재정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할 만했다. 지방직이었던 소방공무원은 지역마다 천차만별인 근로여건과 장비 수준 개선 등을 목적으로 2020년 국가직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소방조직 운영에 필요한 재원 대부분은 정부가 아닌 지자체가 부담한다. 경기도만 해도 전체 소방재원 1조5655억원 중 9265억원을 도의 일반회계전입금으로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추 지사가 소방 예산을 가리켜 ‘가장 골치 아픈 재정 빨대’라고 표현한 건 부적절했다. 어떤 화재·재난 현장이든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기 위해 즉각 출동하고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는 소방공무원이 적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해선 안 될 발언이었다. 예컨대 추 지사가 머무는 도청 집무실이나 관사에 큰 불이 났다고 하면 어느 때고 화마 속으로 뛰어 들어 추 지사를 구하고 화재를 진압하는 게 소방관들 아닌가. 열악한 예산 문제로 소방 장비를 사비로 구입해 근무하는 소방관도 상당하다.
추 지사 발언의 취지를 떠나 표현 자체에 모욕을 느낀 소방관과 그 가족들이 많았을 것이다. 주요 소방노조는 발끈하고 나섰다. 이들은 “칠흑 같은 화마와 재난 속으로 가장 먼저 뛰어드는 소방관들의 목숨값이 고작 지자체 예산이나 갉아먹는 ‘빨대’냐”(한국노총 소속 한국소방공무원노동조합), “소방관이 언제부터 재정을 축내는 짐짝이 되었느냐”(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소방노조), “소방관들의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해 7만 소방관 앞에 즉각적이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라. 소방 인건비와 사업비는 국민 안전과 직결된 필수 비용”(민주노총 소속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등이라며 추 지사의 언행을 비판하고 사과를 촉구했다.
경기도가 순직 소방공무원의 희생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에게 예우를 갖추는 ‘경기소방 119메모리얼데이’ 사업비 1억원을 전액 삭감 대상으로 올린 것도 도마에 올랐다. 경기도는 해당 사업비 1억원을 전액 삭감한 건 추모행사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행사성 지출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라고 해명했지만 소방공무원과 가족들은 관련 예산 복원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추 지사의 ‘재정 빨대’ 발언 사흘 뒤인 16일 오전 8시 38분쯤, 경기 부천시 오정구 내동의 한 공장에서 불이 나 소방관 6명과 공장 관계자 2명이 다쳤다. 먼저 도착해 불을 끄던 소방관 2명이 중상을 입었고, 이 중 1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간담회와 전국체육대회 개회식 참석차 제주도로 향하던 추 지사는 화재 소식을 접한 뒤 일정을 취소하고 화재 현장을 찾았다. 그는 “경기소방이 3분 만에 출동해 피해 확산을 막아냈다”며 “현장에서 작업하는 분들을 먼저 내보내고 소방관들이 가장 뒤늦게 남아서 나오다가 미처 안전하게 대피를 못 했다. 부상한 소방관들의 치료와 회복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 소방관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됐을지 모르겠다. 검게 그을린 방화복을 입은 부천소방서 소속 한 소방대원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된 동료의 생사가 걱정되는 듯 연신 눈물을 흘렸다. 추 지사의 안타까운 표정과 뒤돌아서 벽을 짚고 흐느끼는 소방대원의 모습이 대비됐다. 추 지사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사과 표명 없이 화재 현장을 떠났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이 이날 대신 사과했다. 가뜩이나 부동산·금융 정책 실기로 인한 서울 집값·전월세 가격 급등과 주가 급락, 농지 전수 조사, 북한 지뢰 폭발에 따른 국군장병 부상 등 악재가 잇따르며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낮아진 상황에서 ‘추미애 설화’가 민심을 자극하는 불쏘시개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이용우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소방 재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표현으로 상처받은 소방공무원과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설명하려는 취지였더라도, 위험한 현장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소방관들의 노고와 자부심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점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직 전환의 취지가 현장에서 실현되도록 재정과 처우에 남은 과제를 세심하게 챙기겠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부천 공장 화재 진압과정에서 다친 소방관들의 쾌유를 빌며 “그 분들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며 헌신하는 것에 비한다면 우리가 그분들에게 천금을 준들 아깝겠느냐”고 했다. 추 지사의 “소방은 골치 아픈 재정 빨대” 발언에 일침을 가하는 것처럼 들린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