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공물 봉납하면서 ‘무라야마 담화’는 계승한다는 日총리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7일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한국 정부는 “다시 한 번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시작된 야스쿠니 신사 추계 예대제(例大祭·제사)를 맞아 ‘내각총리대신 다카이치 사나에’ 명의로 ‘마사카키’라고 불리는 공물을 봉납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EPA연합

한국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논평에서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급 인사들이 또다시 공물을 봉납하거나 참배를 되풀이한 데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어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며 “이는 국가 간, 국민 간 신뢰에 기반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한 중요한 토대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유신 전후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제가 일으킨 수많은 전쟁에서 숨진 246만6000여명의 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이 중 대다수가 태평양전쟁과 연관돼 있으며, 특히 극동 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 따라 처형된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하면서도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무라야마 담화’는 계승하고 있다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전날 일본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 관련 질문에 “역사 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며 “무라야마 담화도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전후 50년이었던 1995년에 발표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 담화에서 “아시아 사람들에 대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반성과 사죄의 뜻을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는 총리로 취임하기 전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신인 의원이었던 1995년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적어도 나 자신은 (전쟁의) 당사자라고 말할 수 없는 세대이기 때문에, 반성 따위는 하고 있지 않으며 반성을 요구받을 이유도 없다”고 언급했다.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도 “이 분별없는 견해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범죄 국가의 국민’으로 자손을 옭아매게 될 것”, “침략이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총리 취임 후에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후인 지난해 11월 7일에도 무라야마 담화와 관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외교적 파장과 국제사회의 시선 등을 의식해 태도를 바꾼 것으로 해석된다.

 

총리 취임 이후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하지 않고 있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앞서 교도통신은 다카이치 총리 측 관계자를 인용해 다카이치 총리가 19일까지 사흘간 이어지는 추계 예대제 기간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보류할 방침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