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 선정이 과거 9차례나 무산됐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건설 일정이 늦어질 경우에 대비한 별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무총리 소속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는 2050년 이전 중간저장시설, 2060년 이전 영구처분시설 운영을 목표로 내년 첫 부지 공모에 나선다. 원전 부지에 추가로 짓는 건식저장시설도 2050년 중간저장시설로 사용후핵연료를 반출한다는 전제 아래 규모가 정해져 일정이 장기 지연되면 원전 내 저장공간을 다시 늘려야 할 수 있다.
18일 한국수력원자력·한국원자력환경공단·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고준위위는 지난 4월 부지적합성 조사계획을 의결하고 내년 지방정부를 대상으로 기본조사 대상 부지를 공모할 계획이다. 원자력환경공단은 부지 선정에만 9∼13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 현행 고준위방사성폐기물법에도 중간저장시설은 2050년 이전, 영구처분시설은 2060년 이전 운영하도록 노력한다는 목표가 담겨 있다.
문제는 부지 확보가 계획대로 진행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는 1980년대 이후 방폐장 부지 선정을 9차례 시도했지만 주민 반발과 부지 적합성 문제 등으로 잇따라 무산됐다. 이번에도 공모 지역이 없거나 조사 과정에서 부적합 판정, 주민 반대 등이 이어지면 일정이 늦어질 수 있지만 이에 대비한 대체 일정이나 저장 대책은 마련돼 있지 않다.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공간은 이미 빠르게 차고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습식저장조 저장률은 고리 93.4%, 한빛 86.0%, 한울 75.4%다. 한빛은 2030년, 한울은 2031년, 고리는 2032년 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수원은 이에 대비해 건식저장시설을 추가할 계획이어서 당장 원전 가동 중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시설 역시 중간저장시설 가동 전까지 쓰는 임시시설이어서 2050년 반출 시점이 밀리면 추가 증설이 필요할 수 있다.
한수원은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운영 시점이 법에 명시돼 있어 현재로서는 반출 지연 시나리오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원자력환경공단도 적기 운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수년의 지연이 원전 가동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과거 부지 선정 과정이 여러 차례 무산됐고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