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IA의 올 시즌 뒷문은 주인이 많이 바뀌었다. 시작은 2021시즌부터 지난해까지 5시즌 동안 147세이브를 올린 정해영이었다. 그러나 정해영은 개막전인 3월28일 SSG전에서부터 0.1이닝 3실점으로 블론세이브를 범하는 등 부진을 보였고, 4월초에 마무리 보직을 박탈당했다.
이후 마무리 보직은 2년차 투심볼러 성영탁이 차지했다. 6월 중순까지 승승장구하던 성영탁은 덕분에 아시안게임 대표팀에도 발탁됐지만, 140km 초반대의 투심으로 버티는 건 한계가 있었다. 6월20일 kt전 아웃카운트 없이 5실점하면서 와르르 무너졌고, KIA는 집단 마무리 체제를 가동했다.
후반기 들어 KIA가 꺼내든 마무리 카드는 좌완 파이어볼러 이의리였다. 전반기에 선발로 10경기에 등판해 1승6패 평균자책점 9.42, 그야말로 ‘대폭망’했던 이의리는 일본 단기 연수를 다녀온 뒤 불펜으로 보직을 전환했고, 150km 중후반에 이르는 폭발적인 포심 패스트볼을 앞세워 추격조와 승리조를 거쳐 마무리까지 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의리의 고질병인 제구 불안은 결국 해결되지 못했고, 9월에만 세 차례 블론세이브를 범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시즌 막판 마무리로 승격된 건 우완 전상현이었다. 전상현은 10월 6경기에 등판해 8.2이닝을 던지며 피안타 없이 무실점으로 완벽한 투구를 선보이며 정규시즌을 끝냈고, 이러한 기세는 가을야구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표류했던 KIA 마무리 자리가 돌고돌아 전상현에게까지 왔고, 전상현은 ‘가을 끝판대장’ 모드를 보여주고 있다.
전상현은 18일 전남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LG와의 2026 KBO 준플레이오프(준PO·5전 3승제) 2차전에서 6-3으로 앞선 8회 2사 1,2루 위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전날 1차전에서도 1.1이닝 세이브를 수확한 전상현의 이틀 연속 등판이었다. 9회에 올라 아웃카운트 3개를 처리하는 것과 8회 2사에 올라 4아웃을 처리하는 것은 이닝은 0.1 차이지만, 투수에게 가중되는 부담은 천지차이다. 멀티이닝을 가져간다는 것은 그만큼 체력 소모를 요한다. 게다가 공 하나에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있는 가을야구에서는 그 부담감이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전상현은 묵묵히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상대한 타자는 이재원. 지난 4일 잠실 KIA전에서 시라카와를 상대로 타구 속도 191.9km의 홈런을 터뜨린 ‘잠실 빅보이’다. 타구 속도 191.9km는 올 시즌 KBO리그는 물론 미국 메이저리그(MLB), 일본 프로야구(NPB)에서도 나오지 않은 수치다. 올 시즌 전 세계에서 가장 타구 속도가 빠른 타구를 날린 게 이재원이다. 컨택트 능력은 떨어지지만 걸리기만 하면 넘길 수 있는 타자다.
홈런포 하나면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전상현은 누구보다 침착했고, 이재원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공은 딱 3개였고, 구종은 주무기 슬라이더 하나면 충분했다. 몸쪽 높은 코스 슬라이더로 파울을 만들어내며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전상현은 2구째 바깥쪽 흘러나가는 슬리어더로 헛스윙을 유도해 0B-2S를 만들어냈다. 다급해진 이재원의 심리를 이용한 전상현은 3구째 슬라이더는 2구보다 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게 던졌고, 이재원의 배트는 여지없이 헛돌았다. 전상현에게 삼진을 당해 4타석 4삼진을 당한 이재원은 9회초 더그아웃에서 눈물을 보이는 장면이 중계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9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전상현은 오지환을 삼진, 박동원을 좌익수 뜬공, 구본혁을 삼진으로 처리하며 KIA의 6-3 승리를 지켜냈다. 이틀 연속 4아웃 세이브. 2차전 데일리 MVP는 전상현의 몫이었고, 남은 세 경기에서도 세이브를 수확해낸다면 준플레이오프 전체 MVP도 노려볼 만한 전상현의 끝판대장 모드다.
지난 12일 LG와의 3위 결정전으로 치러진 정규시즌 최종전에서도 세이브를 올렸던 전상현은 경기 후 “1, 2차전을 이기고 서울로 가고 싶었는데 굉장히 기쁘고 3차전에서 빨리 끝내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현재 몸 상태는 좋고 감독님께서 이렇게 믿고 내보내 주시기에 책임감을 느끼고 임하고 있다”며 “이재원에게는 큰 것을 맞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집중하고 던졌는데 초구 위험한 실투에 저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범호 KIA 감독이 “전상현이 잘 막아주면 우리 선수단이 즐겁게 웃으며 경기장을 나가는 상황”이라며 더 분발을 촉구한 것에 대해 전상현은 “더 부담을 주시는 것같다. 감독님이 평소에 장난식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냥 제가 할 것만 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준PO에서 매 경기 던질 수 있다. 우리 타자들이 좋기 때문에 대량득점이 나면 좀 더 쉽게 편안하게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