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현 공소청)에 감찰부가 생긴 것은 5공화국 시절인 1983년의 일이다. 한 해 전 검사들이 변호사한테 뇌물을 받은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때 전두환 대통령이 격노하자 법무부는 부랴부랴 대검에 자체 감찰 기구를 두는 수습책을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다. 초대 감찰부장에는 당시 검사장급이던 김경회(2001년 별세) 전 부산고검장이 임명됐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감찰부가 일을 열심히 하면 조직 안에서 인심을 잃고, 그렇다고 일을 안 하면 무능한 기구로 전락한다”는 말로 고뇌를 드러냈다. 어느 기관이든 감찰 담당자라면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오늘날 행정부의 숱한 감찰 담당자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직책이 있다. 2014년 신설된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이란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차관급 대우와 3년 임기 보장을 받지만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등 임명 절차가 까다롭다. 대통령 친인척 및 수석비서관급 이상 공직자의 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것이 임무다. 특별검찰관법 제정 이듬해인 2015년 3월 검찰 출신 이석수 변호사가 초대 감찰관에 취임했다. 그 또한 ‘열심히 감찰 활동을 해서 민심을 잃느냐, 아니면 무능하다는 지적을 듣더라도 그냥 적당히 일할 것인가’ 고심이 무척 깊었을 법하다.
2016년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위 정황이 언론에 보도됐다. 우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검찰·경찰·국가정보원·국세청 등 이른바 사정(司正)기관들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런데도 이석수 감찰관은 우 수석을 겨냥한 감찰 조사에 착수했다. 그 이후 상황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이 감찰관을 내친 박 대통령의 조치는 되레 부메랑이 되어 청와대를 강타했다. 우 수석은 ‘국정 농단’ 사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박 대통령 본인은 국회 탄핵소추를 당한 데 이어 2017년 3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파면됐다.
그 뒤 지금까지 10년 넘게 감찰관 자리는 공석이다. 여야 모두 박근혜정부 붕괴의 단초가 된 감찰관 직위에 부담을 느낀 탓일 것이다. 가히 ‘이석수 효과’로 불릴 만하다. 올해 들어 부장검사 출신 최길수 변호사가 감찰관 후보자로 지명돼 진작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쳤으나 임명이 차일파일 지연된 것도 그 때문 아니겠는가. 여야가 19일 최 후보자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 채택에 합의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여권 입장에선 대통령과 그 주변을 늘 감시하는 감찰관의 존재가 무척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