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가신 후
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산책 때마다 소리 없이
공중을 나는 새들을 올려다보곤 했는데요.
가을 깊어가며
날갯짓이 더 말갛게 보이곤 했는데요.
오십여 일 전
방안에 반듯하게 누워 잠든 어머니 머리맡에서
그 새를 보았는데요.
요즘은 그 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
들리지 않는 소식들이 많아진 세상에서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의 구분이 의미가 없어지긴 했지만요.
내가 본 것이 과연 새였을까요?
(하략)
시를 다 읽고 제목을 다시 올려다본다. “거기도 새가”라는 말은 마치 “어머니 가신” 그곳에도 새가 보이지 않는지 혹은 아직 보이는지 묻는 긴한 물음 같다. 새란 무엇일까. 어머니와 함께 내 곁에서 사라진 새. 더는 보이지 않는 새. 어쩌면 새는 어머니와 함께한 지난 시간의 증거가 아닐까.
시 속 사람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내가 본 것이 과연 새였을까요?” 떠난 이에게,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분명 있었지요?, 묻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그는 계속해서 새를 찾는다. 보이지 않는 새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이를테면 잎새가 마지막 손목을 놓아버리고 떨어질 때, 누군가 마지막 인사를 전할 때 “그 새”를 떠올린다. 세상의 모든 작별 앞에서 새는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때로 더 선명하다는 것. 믿음은 결국 보이는 것 저 너머를 향해 있다는 것.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