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불안정성에 대안 경로 부상 수에즈·희망봉 우회보다 거리 단축 결빙 시기·초대형 컨선 운항 제한 거리 짧다고 운송비 절감 장담못해
정부, 운송 다변화 위해 개척 추진 경제성 검증 등 넘어야 할 과제 많아
부산에서 출발한 선박이 북극항로를 거쳐 22일 만에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도착하면서 북극항로가 새로운 해상 운송길로 주목받고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과 이란 전쟁 여파로 홍해 항로의 안전 우려가 커지면서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선박들의 운항거리를 크게 줄일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그러나 결빙으로 운항 시기가 제한되고 대형 컨테이너선 운항도 어려워 북극항로 활용을 확대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팬스타그룹의 ‘아크로호’는 지난 8월22일 부산항을 출발해 러시아 북부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북극항로를 거쳐 9월13일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 도착했다. 편도 운항에는 22일이 걸렸다. 북극항로는 러시아 북부의 북극해를 지나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해상 운송길로, 수에즈운하를 통과하거나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우회하는 다른 항로보다 거리가 짧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부산에서 유럽까지 수에즈운하나 희망봉을 거칠 때보다 운항거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분석에 따르면 부산∼로테르담 구간의 운항거리는 북극항로 약 1만3000㎞, 수에즈항로 약 2만400㎞, 희망봉 우회항로 약 2만4000㎞다. 예상 운항기간도 북극항로가 20∼24일로, 수에즈항로(30∼34일)와 희망봉 우회항로(36∼40일)보다 짧았다. 다만 이는 부산∼로테르담 구간 7만8000t급 선박의 7∼10월 운항 조건을 가정한 추정치로, 실제 운항기간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홍해의 안전 문제로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HMM과 머스크 등 주요 해운사들은 수에즈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항로를 이용해왔는데, 이 경우 운항거리가 늘어나 연료비와 운송시간 부담이 커진다.
다만 북극항로가 해운사들의 비용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거리가 짧다고 운송비까지 줄어드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컨테이너 정기선은 대형 선박에 많은 화물을 싣고 여러 항만을 거치며 운송비를 줄인다. 업계에 따르면 부산∼로테르담 구간의 컨테이너 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운송비는 수에즈항로의 2만TEU급 선박이 726달러, 북극항로의 4300TEU급 내빙선은 1128달러로 추산됐다. 선박 규모와 운항 조건이 다른 경우를 비교한 결과지만,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북극항로의 비용이 더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극항로의 운항 여건도 기존 컨테이너 정기선과 맞지 않는다. 북극항로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운항이 어렵고 중간에 들를 수 있는 항만도 부족하다. 바다가 얼어붙는 시기에는 운항이 제한돼 연중 정해진 일정을 맞추기도 어렵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대형 컨테이너선에 화물을 모아 싣고 여러 항만을 거치며 매주 정해진 일정에 따라 운항하는 것이 정기선 사업의 핵심”이라며 “북극항로는 선박 규모와 기항지, 운항 시기에 제약이 있어 일부 화물 운송에는 활용할 수 있더라도 기존 컨테이너 정기선을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철광석과 석탄, 곡물 등을 운송하는 벌크선도 북극항로 이용이 유리하지만은 않다. 정해진 항로를 오가는 컨테이너 정기선과 달리 화물의 출발지와 목적지에 따라 운항 경로가 달라져 북극항로를 통한 거리 단축 효과도 운송 구간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기간이 단축 여부가 갈린다”며 “화주가 원하지 않는 한 굳이 그쪽을 통해서 가는 게 경제성이 있나 싶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러한 제약에도 해상 운송 경로를 다변화하고 부산항을 새로운 물류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북극항로 개척을 추진하고 있다. 북극항로가 활성화되면 선박 연료 공급과 수리 등 관련 항만 산업에도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해상법 전문가인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액화천연가스(LNG)나 철광석을 운송하는 경우에는 충분히 경제성이 있다고 본다”며 “다만 현재는 러시아 관련 경제 제재에 묶여 있어 제재가 풀려야 경제성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