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늦었어도 손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지난달 경북 영양군의 과수원에서 작업을 하던 김모(60대)씨는 갑작스러운 극심한 가슴 통증과 함께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급성심근경색 증상이었다. 무엇보다 골든타임 확보가 시급했던 순간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는 망설임 없이 닥터헬기를 요청했다.
안동병원 계류장에서 떠오른 닥터헬기는 1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김씨를 이송했다. 헬기 내부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응급처치가 이뤄졌고, 병원 도착과 동시에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에서 막힌 혈관을 뚫는 응급 시술이 시행됐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이송했다면 길 위에서 골든타임을 놓쳤을 아찔한 상황이었다. 지역 거점 병원의 유기적인 응급 대응 인프라 덕에 김씨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지역 완결형 의료센터 만든다
21일 안동병원에 따르면 닥터헬기는 전국에서 운영 중인 닥터헬기 가운데 처음으로 누적 출동 4000회를 기록하며 경북 북부권의 골든타임을 수호해 왔다. 이런 성과는 닥터헬기 단독의 힘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24시간 365일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응급 전용 중환자실, 전용 수술실로 이어지는 응급의료 인프라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는 즉시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전주기 응급 대응체계가 유기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도권 원정 진료 없는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는 최근 지방 의료 공백의 가장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환자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이송부터 진단, 수술, 재활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차질 없이 마치고 완치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안동병원은 보건복지부와 경북도가 지정한 경북 권역응급의료센터이자 지역 중증 응급환자의 최종 치료를 책임지는 거점 병원이다. 고난도 진료 인프라를 수년에 걸쳐 축적해 오며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안동병원이 운영 중인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와 권역외상센터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경북 북부권 중증환자의 생명선이자 의료 안전망의 핵심 축이다. 심근경색과 뇌졸중, 복합 중증 외상과 같이 1분1초가 생사를 가르는 치명적 질환에 대응하기 위해 안동병원은 진료과 간 장벽을 허문 ‘원스톱 패스트트랙’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먼저 응급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전문의 전담팀이 즉시 소집된다. 검사부터 시술과 수술이 단 하나의 흐름으로 끊김 없이 이어지는 구조다. 지역 환자와 보호자는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이나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원정 진료를 떠나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됐고 골든타임 내 맞춤형 치료를 안심하고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경북도 관계자는 “안동병원은 수익성이 낮아 다른 민간 병원들이 선뜻 투자하기 어려워 하는 중증·응급 필수의료 분야에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해 민간 의료기관이 어떻게 공공 의료성을 유지하고 지역 필수의료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첨단 의료시스템부터 헬스투어까지
안동병원의 거점 역할은 탄탄한 응급시스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최첨단 로봇 수술 장비를 비롯해 고해상도 영상 진단 장비와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 의료시스템 등 최신 의료기기를 발 빠르게 도입했다. 고난도 암 수술부터 복잡한 심뇌혈관 시술까지 정밀하고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여기에 모바일 예약과 키오스크 시스템, 스마트 진료 대기 안내 등 편의성을 높여 환자 중심의 의료 환경도 조성했다.
휴식과 치유를 결합한 ‘헬스투어’는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으로 손꼽힌다. 종합 건강검진과 안동 특유의 풍부한 문화·휴양 자원을 결합한 차별화된 의료 관광 프로그램이다. 수검자는 병원에 체류하며 정밀검진을 받고 검진 이후에는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등 지역의 고즈넉한 문화유적을 둘러보며 휴식과 치유를 동시에 누리게 된다. 단순한 병원 방문을 넘어 ‘쉬어가는 의료 서비스’를 정착시키는 한편 지역 관광 활성화와 신규 의료 수요 창출이라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안동병원의 노력은 객관적인 평가로 입증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지속해서 A등급을 획득했고, 글로벌 매체에서 선정하는 아시아·태평양 최고 전문병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안동병원 관계자는 “지역 의료의 소멸은 곧 지역사회의 소멸로 이어진다”면서 “대도시와 지방 간의 의료 격차가 심화하는 현실 속에서도 첨단 의료기술과 응급 안전망을 결합해 ‘지역주민의 생명과 건강을 현지에서 지킨다’는 사명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북 북부의 생명선을 넘어 대한민국 지역 완결형 의료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도록 환자를 살피는 역할을 충실히 해 내겠다”고 덧붙였다.
◆강신홍 안동병원 이사장 “응급의료 적자 불가피 … 공공 지원 뒷받침돼야”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병원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응급의료는 수익성을 따지는 경영의 영역이 아닙니다.”
강신홍(사진) 경북 안동병원 이사장은 중증·응급 의료체계 유지의 중요성을 이같이 설명했다. 365일 24시간 가동되는 병원을 지휘하는 그의 말에는 지방의 필수의료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강 이사장은 전국 최초 닥터헬기 출동 4000회라는 실적에 대해 “응급의료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에서 중증 응급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임직원과 관계 기관이 피땀 흘려 축적해 온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출동 실적보다 지역과 거리에 상관없이 중증환자가 적정한 시간 내에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를 유지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4시간 응급의학과 전문의 상주와 응급 전용 중환자실 운영은 민간 의료기관 입장에서 상당한 비용과 적자 부담을 안고 가는 결정이다. 그럼에도 시스템을 지켜내는 이유는 명확하다. 강 이사장은 “중증환자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전문 인력과 시설, 장비를 24시간 안정적으로 가동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지역 주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 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타협할 수 없는 운영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24시간 대기체계 특성상 구조적 적자가 불가피한 만큼 개별 병원의 노력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지속 가능한 필수의료망을 지탱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안동병원은 첨단 디지털 의료 혁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로봇수술과 인공지능(AI) 스마트 시스템, 의료 데이터 기반 진료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하며 미래형 의료기관으로의 변모를 꾀하는 중이다. 나아가 재활과 회복, 돌봄까지 연결되는 의료서비스망을 구축해 주민들이 수도권으로 원정 치료를 떠나지 않고도 지역 내에서 필요한 모든 진료를 완결짓는 ‘지역 의료 자립’을 완성하겠다는 구상이다.
365일 긴장의 연속인 중압감 속에서 병원을 지탱하는 가장 큰 원동력으로 강 이사장은 현장의 임직원들을 첫손에 꼽았다. 그는 “지난 44년간 안동병원을 이끌어온 진짜 힘은 현장을 지켜온 의료진과 구성원들의 책임감”이라며 “생사의 기로에 섰던 환자가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안동병원은 단순한 의료기관을 넘어 지역의 삶과 미래를 든든히 뒷받침하는 필수적인 사회적 기반으로 자리매김하겠다”며 “앞으로도 주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거점 병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