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없는데 또 화염 속으로… ‘방어적 진압’ 약속은 어디로 갔나

완도 참사 석 달 만에 부천 공장 화재서 또 소방관 순직
지난 19일 경기도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부천 공장 화재 진압 중 순직한 고(故) 김진석 소방위의 영결식에서 유가족이 슬픔에 잠겨 있다. 공동취재

 

“인명 피해 우려가 없으면 대원을 무리하게 투입하지 않고 밖에서 불길을 잡겠다”

 

소방당국이 순직 사고가 날 때마다 내놓았던 이른바 ‘방어적 진압 원칙’이 또다시 현장에서 무력하게 무너졌다. 경기 부천의 한 공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고(故) 김진석 소방위의 투입 결정을 두고, 무리한 내부 진입을 강행한 지휘부의 오판이 참사를 불렀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20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경기 부천시 오정구 내동의 한 공장에서 불이 나 진화 작업을 벌이던 김 소방위가 급격히 번진 불길과 짙은 연기에 갇혀 숨졌다. 화재 건물 3층에 투입됐던 김 소방위는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이튿날 오전 0시 55분쯤 순직했다.

 

문제는 김 소방위가 화염 속으로 들어갈 당시, 건물 안에는 구조해야 할 인원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극히 희박했다는 점이다. 불길이 모두 잡힌 뒤 진행된 최종 수색에서도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구할 사람도 없는 텅 빈 건물에 대원을 밀어 넣어 사지로 내몬 셈이다.

 

이번 사고는 소방청이 전남 완도 저온창고 순직 사고의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은 지 불과 석 달 만에 터져 나왔다.

 

지난 4월 완도에서도 박승원 소방경과 노태영 소방교가 맹렬한 불길에 고립돼 목숨을 잃었다. 당시 합동조사단은 위험 정보 공유 부실과 미흡한 현장 지휘를 원인으로 꼽았고, 소방청은 “인명구조 가능성이 낮으면 외부에서 확산을 막는 방어적 진압을 우선하겠다”고 공언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2024년 1월 두 명의 젊은 소방관을 앗아간 경북 문경 육가공공장 화재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국은 대원 안전 중심으로 재난현장표준절차(SOP)를 전면 개정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참사는 장소만 바뀐 채 되풀이됐다.

 

현장에서는 지휘부의 역량 부족과 경직된 인사 구조가 화를 키우고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승진 요건인 현장 경험을 채우기 위해 행정직 간부가 일시적으로 현장 지휘관을 맡는 관행 탓에, 일촉즉발의 화재 현장에서 공격적 진압과 방어적 진압을 가려낼 전문적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전검재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경기소방지부 사무국장은 “내부 진입 여부는 결국 누군가의 판단에 따른 것인데, 현장 지휘관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행정 업무를 주로 하던 간부가 잠시 현장에 배치되는 구조에서는 내부 진입 같은 중대한 의사결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대원이 고립되는 긴급 상황에서도 초동 조치가 미숙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김종수 전공노 소방본부 서울소방지부장도 “현장에서는 공격적 진압과 방어적 진압을 적절히 판단해야 하는데, 외부에서 보는 상황과 실제 내부 환경은 다를 수 있다”며 “지휘부는 단순히 불이 났으니 진입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위험 요소가 있을지 예상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지휘관의 단순 육안이나 감에 기댈 것이 아니라 첨단 장비를 통한 객관적 위험 분석과 함께 고립 대원을 구출할 신속동료구조팀(RIT)의 실질적 가동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장 지휘관의 감각에만 의존하지 말고 첨단장비를 활용해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판단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어떤 화재 현장이든 소방관이 고립되는 상황에 대비해 신속동료구조팀을 대기시키고, 구조팀에 대한 전문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소방청 관계자는 “현재 조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답변은 어렵다”면서도 “현장 관계자의 말만 믿고 내부 인명 검색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