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사령부가 있는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 내 청소년 복지 센터에는 ‘로이드 버크’(Lloyd Burke)란 이름이 붙어 있다. 6·25 전쟁 당시 한국을 침략한 중공군에 맞서 싸운 전공으로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은 로이드 버크(1924∼1999) 육군 대령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렇게 명명(命名)했다. 버크는 20세기 미 육군이 치른 2차대전(병사), 6·25 전쟁(위관 장교) 그리고 베트남 전쟁(영관 장교)에 모두 참전한 드문 경력의 소유자다.
미 전쟁부는 19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버크의 30년 넘는 군생활을 재조명한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미 중남부 아칸소주(州)에서 태어난 버크는 1942년 고교를 졸업하고 주립 사범대학에 진학했으나 이듬해인 1943년 자퇴했다. 당시는 2차대전 기간이라 미국은 젊은 남성들을 상대로 징병제를 실시했다. 1943년 미 육군에 병사로 입대한 버크는 훈련을 마치고 유럽 전선으로 보내져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탈리아에 주둔한 공병 부대에서 복무했다.
버크는 전후인 1946년 1월 전역하고 제대 군인 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다시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이왕이면 육군 장교가 되기로 결심하고 대학에서 학생군사교육단(ROTC) 과정을 이수했다. 1950년 버크가 ROTC 훈련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졌다. 소위 계급장을 단 그는 보병학교에서 소정의 교육을 수료한 직후 소대장 보직을 받고 한국에 파병됐다.
버크가 속한 부대는 1950년 11월 청천강 일대까지 북진했으나 중공군의 거센 반격을 받고 퇴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때 그는 수적 우세를 앞세운 중공군의 압도적 공격을 5차례나 막아내며 아군의 안전한 후퇴에 공헌함으로써 육군 지휘부로부터 수훈십자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을 받았다.
1951년 10월 남북 간의 전선은 개전 이전과 마찬가지로 38선 부근에 형성돼 있었다. 이젠 중위로 진급한 버크가 이끄는 소대에 ‘강원 철원 역곡천 부근 200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선두에 서서 병사들을 향해 “나를 따르라”고 외친 그는 중공군 벙커 3곳을 발견하고 직접 수류탄을 던졌다. 중공군의 기관총 사격에 미군은 상당한 피해를 입고 버크 역시 크게 다쳤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버크의 지휘 아래 미군은 중공군의 기관총과 박격포 진지를 완전히 무력화하고 벙커 안의 병력은 물론 밖으로 도망치는 인원들까지 모조리 사살했다.
젊은 중위가 1개 소대 병력으로 중공군 100여명을 몰살시킨 전공은 미 행정부를 기쁘게 했다. 이듬해인 1952년 한국 복무를 마치고 귀국한 버크는 백악관에 초청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수여하는 명예훈장을 받았다. 이는 미국에서 군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 영예에 해당한다.
6·25 전쟁 정전협정 체결 후에도 버크는 육군에 남는 길을 택했다. 1965년 당시 중령 계급이던 그는 대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해 최일선에서 전투를 지휘하다가 헬기 추락으로 중상을 입기도 했다. 1978년 대령을 끝으로 무려 30년이 넘는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민간인이 된 버크는 6·25 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사업에 앞장섰다. 특히 미 수도 워싱턴에 6·25 전쟁 참전 기념비를 세우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1995년 7월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이 나란히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기념비 제막식에는 버크도 함께했다. 1999년 74세를 일기로 별세한 그는 워싱턴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영면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