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걸려 온 피싱 전화를 국내 휴대전화 번호인 ‘010’으로 둔갑시켜 사기 조직에 제공한 중계기 유통·운영 조직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은 중계기 반입부터 국내 유통과 설치·운영까지 역할을 나누고 텔레그램으로 지시를 주고받으며 수사망을 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경찰청 마약·국제범죄수사대는 사기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20대 러시아인 총괄유통책 A씨 등 16명을 구속하고 80명을 불구속했다고 20일 밝혔다. 또 중국인 총책 등 5명도 수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5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해외 인터넷전화의 발신번호를 국내 휴대전화 번호로 바꿔주는 중계기를 국내로 반입한 뒤 원룸 등에 설치·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중계기는 하드디스크 등으로 위장해 들여왔으며, 해외 피싱 조직이 국내 번호로 표시되는 전화를 걸 수 있도록 범행 기반을 제공했다.
조직원 대부분은 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러시아계 국적의 외국인으로, 텔레그램의 러시아어 구인·구직 게시판을 통해 모집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총괄 유통책과 모집책, 장비 전달책, 중계기 운영책 등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직접 만나지 않고 특정 장소에 장비를 두고 찾아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중계기와 유심을 전달했다.
이들이 공급한 중계기는 검찰 사칭 피싱사기(사이버범죄)에 이용돼 피해자 19명이 약 15억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또 국내 유심 제공자들은 개당 6만~12만원을 받거나 대출을 받기로 하고 자신의 명의로 유심을 개통해 넘긴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는 올해 2월 원룸 건물 배수구에서 다량의 유심 조각이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해당 유심이 검찰 사칭 피싱사기에 이용된 사실을 확인하고 주변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통해 중계기 운영책을 특정했다. 이후 장비와 유심의 전달 경로를 추적해 유통책과 모집책 등 조직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경찰은 장비 보관 창고 2곳과 운영책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해 중계기 400대와 대포폰 121대, 유심칩 5256개, 라우터 등 관련 장비 848대를 압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발신번호가 010으로 표시되더라도 정상적인 국내 전화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검찰 등 수사기관을 사칭해 송금이나 현금 전달을 요구하면 통화를 끊고 해당 기관의 공식 연락처로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부산경찰청은 추가 조직원과 해외 총책의 신원·소재를 파악하고 중계기의 국내 반입·유통 경로와 범죄수익을 계속 추적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