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앨버타주(州)에서 연방 탈퇴 및 독립 찬반을 묻는 주민 투표를 실시한 결과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간 석유 자원이 풍부한 앨버타 분리주의자들을 은근히 자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이 캐나다 내정에 어떠한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해진 만큼 트럼프로선 체면을 구긴 셈이 됐다.
20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전날(19일) 실시된 주민 투표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무려 76% 이상이 “앨버타주는 캐나다 연방의 일부로 계속 남아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AFP는 “트럼프와 그 동맹 세력이 지지한 분리주의자들의 결정적 패배”로 규정했다.
캐나다 남서부에 위치하며 미국과 국경을 접한 앨버타는 캐나다에서 주민들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오늘날 캐나다는 미국·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에 이은 세계 4위의 산유국인데, 그 캐나다에서도 원유 매장량이 가장 풍부한 지역이 바로 앨버타다.
문제는 앨버타가 미국 등에 석유를 수출해 번 막대한 돈이 온전히 앨버타 주민들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방정부는 앨버타에서 거둬들인 세금을 재정 자립도가 낮은 다른 주들에 분배한다. 앨버타 주민들 입장에선 ‘왜 우리가 일방적으로 희생만 해야 하느냐’는 불만을 제기할 법하다. 주민 일부가 ‘캐나다 연방을 탈퇴해 독립국이 되자’, ‘캐나다에서 벗어나 차라리 미국에 합류하자’ 등 분리주의에 입각한 주장을 줄기차게 제기해 온 이유다.
물론 이번 투표 자체가 앨버타의 독립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앨버타가 캐나다 연방에 잔류할지, 아니면 앞으로 분리·독립 찬반을 묻는 구속력 있는 주민 투표를 실시하기 위한 법적 절차를 개시할지 묻는 것이 이번 투표의 목적이었다. 다만 압도적 다수의 주민들이 캐나다에서 떨어져 나가는 데 반대한 만큼 향후 구속력 있는 주민 투표 실시는 물건너간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는 캐나다 연방정부를 이끄는 마크 카니 총리의 정치적 승리로 규정할 수 있다. 2025년 카니의 총리 취임 이후 캐나다는 이웃나라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와 극심한 갈등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는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 카니를 총리가 아닌 ‘주지사’(Governor)라고 각각 부르며 극심한 모욕을 가했다. 캐나다산 상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의사를 밝히며 ‘경제적으로 미국에 종속된 나라’가 될 것을 압박했다. 이에 카니는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선포하고 강력히 맞서는 중이다.
그간 캐나다는 물론 미국 언론도 트럼프 측근들이 앨버타의 분리주의 지도자들과 은밀한 만남을 갖고 ‘독립 추진을 적극 후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보도를 꾸준히 내놓았다. 다만 트럼프 본인이 공개 석상에서 대놓고 앨버타 독립을 지지한 사실은 없다. 카니는 주민 투표 실시 전 연설을 통해 “우리나라 밖 일부 세력이 캐나다를 분열시키고 있다”며 “국가적 단결”을 강조했다. 캐나다·미국 언론은 여기서 ‘나라 밖 세력’이 미국 행정부 그리고 트럼프를 겨냥한 표현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