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환자 곁에… 의료현장서 인생 황혼기… 최고로 행복합니다 [나의 삶 나의 길]

영월요양병원장 주혜란 박사

28세에 국내 최초 여성보건소장 취임
경기 의정부·충북 옥천 등 현장 누벼
AIDS 예방·여성인권 문제에도 관심

의사였던 부모, 한평생 봉사하는 삶
생 끝까지 환자가 있는 곳 가라 일러

75세에 의료 취약한 농촌으로 한달음
양구보건소장 2년 뒤 영월요양병원行
외로운 어르신 위해 노래교실도 열어

보건의료, 질환 조기 발견·관리가 핵심
은퇴 의사 경험 지역 의료에 활용해야
숙소·기본 활동 여건 국가 지원 필요
“의사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꿈 많던 20대에 그 말씀을 따라 보건소장으로 봉사하는 의사의 삶을 시작했지요. 이제 돌고 돌아 인생의 황혼기에 다시 농촌으로 왔습니다. 의료가 필요한 곳에서 마지막 봉사를 하고 싶어요. 너무 행복합니다.”


한글날인 지난 9일 세계일보 편집국에서 만난 주혜란(78) 박사는 환하게 웃었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영월요양병원장’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국내 최초이자 최연소 여성 보건소장으로 출발해 국제 보건 분야에서 활동하고 사회적 관심의 한복판에 섰던 그의 이력을 생각하면 소박한 명함이다. 하지만 주 박사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과거의 명예나 직함이 아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주혜란 박사가 지난 9일 세계일보 편집국에서 “의사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며 의사와 소명과 봉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28세에 국내 첫 여성 보건소장으로 의료봉사의 길에 들어선 그는 돌고 돌아 70대 후반에 양구보건소장을 거쳐 영월요양병원장에서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다. 1977년 28세에 국내 최초 여성 보건소장으로 취임했다. 여성에게 공공의료기관의 책임자 자리를 맡기는 일조차 낯설었던 시절이다. 그는 충북 옥천과 경기 의정부, 서울 용산구 보건소 등에서 일하며 의료의 손길이 필요한 현장을 누볐다. 이후 미국 국립보건원(NIH) 관련 업무와 국제 보건 분야 활동을 통해 전문성을 넓혔다.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과 성매매 여성의 건강·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전 남편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시절에는 활발하지만 튀는 대외활동으로 ‘경기도의 힐러리’라는 별칭을 얻었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에는 미셸 캉드쉬 IMF 총재와의 친분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의 명함에 다시 새겨진 곳은 서울의 번화가도, 국제기구 회의장도 아닌 강원도 영월이다. 20대에 시작한 농촌 의료봉사의 길을 인생의 황혼기에 다시 걷고 있다.

영월요양병원장으로서 그의 하루는 병실을 도는 일로 시작한다. 밤새 통증은 없었는지, 식사는 잘했는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묻는다. 청력이 좋지 않은 환자에게는 가까이 다가가 천천히 말을 건넨다. 누워 지내는 90대 어르신의 욕창 상태를 살피고, 배변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가 밤새 불편하지 않았는지도 확인한다.

 

“환자들은 아픈 곳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래서 더 세심하게 봐야 합니다. 이것저것 살피다 보면 오전이 금세 지나가요.”



그에게 환자 돌봄은 처방전을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동이 불편해 병원을 찾기 어려운 농촌 어르신들을 만나러 직접 마을로 나간다. 청진기를 목에 걸고 혈압과 혈당을 확인하며 건강 상태를 살핀다. 홀로 지내는 노인들의 외로움과 우울을 덜어주기 위해 트로트 노래교실도 마련했다. 함께 노래하고 웃는 동안 굳었던 표정이 풀리고, 서로 안부를 묻는 대화가 이어진다. 최근에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재능나눔 스마일봉사단 활동에도 참여해 마을 경로당과 회관을 찾는다.

“저를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잖아요. 바쁘지만 즐거워요. 누군가에게 봉사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농촌 의료현장으로 돌아온 것은 2022년이다. 당시 75세였던 그는 의학전문지 구인광고에서 강원 양구보건소장 자리가 수년간 공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순간 젊은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의료의 손길이 부족한 지역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을 돌보던 때였다.

 

“어머니께서 생전에 ‘혜란이 네가 보건소장을 할 때가 제일 행복해 보이고 자랑스러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직접 지원했어요.”

보건소에서 나이가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경험과 의지를 설명하며 설득했다. 결국 양구보건소장을 맡아 2년간 주민들을 돌봤다. 처음에는 양구가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거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의료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움직일 이유는 충분했다.

 

농촌에서는 병원까지 이동하는 것 자체가 큰일인 주민이 적지 않다. 고령자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거나 보호자가 없어 진료를 미루기 쉽고, 고혈압과 당뇨 같은 만성질환도 증상이 뚜렷하지 않으면 방치하기 십상이다. 주 박사는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꾸준히 관리하는 일이 지역 보건의료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의료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아프기 전에 살피고, 제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특히 농촌 어르신들에게는 누군가 찾아와 상태를 확인해 주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그가 제안하는 것은 은퇴 의사들의 경험을 지역 의료에 활용하는 일이다. 고령화와 의료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촌에 오랜 임상 경험을 갖춘 의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숙소와 기본적인 활동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퇴한 의사들에게는 오랜 경험과 경륜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농어촌으로 내려와 취약계층의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야 해요. 개인의 선의에만 기대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역 의료를 지키는 일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주 박사가 의료와 봉사를 삶의 중심에 놓게 된 데에는 부모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아프리카에서 오랜 기간 천연두 퇴치 활동과 감염병 연구에 힘쓴 의사 주인호 박사다.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 보건 분야에서 활동해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피난민들을 돕기 위해 서울 왕십리에 보건병원을 세우는 등 어려운 이들을 위한 의료 활동에 헌신했다.

 

어머니 김경신 박사 역시 의사였다. 불우한 노인들을 위한 요양병원을 운영하며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환자 곁을 지켰다. 두 사람은 일곱 남매 가운데 다섯을 의사로 길렀다.

“아버지는 의사가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환자 곁을 지켜야 한다고 하셨어요. 어머니도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평생 실천하셨습니다. 부모님이 보여주신 삶이 제게는 가장 큰 교육이었어요.”

 

그는 부모에게서 받은 가르침을 다음 세대에 돌려주려 2019년 모교인 고려대에 장학금 10억원을 기부했다. 좋은 의사이자 세계를 이끌 인재를 길러달라는 뜻에서였다. 환자를 직접 돌보는 일이 지금 아픈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후학을 기르는 일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돌볼 의사를 키우는 일이다.

농촌마을 노인을 위한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주특기인 노래를 부르는 주혜란 박사. 영월요양병원 제공

주 박사에게는 의사 외에 또 다른 꿈이 있었다. 바로 성악가다. 의사가 되기 전부터 노래를 좋아했던 그는 의사로 살아오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70세에 가수로 데뷔한 뒤에는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재능기부를 통해 사람들과 음악을 나누고 있다. 의료봉사 현장에서 노래교실을 마련한 것도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가 삶의 모토로 삼는 말은 ‘If I rest, I rust(쉬면 녹슨다)’다. 쉬지 않고 움직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면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주변에서 한 사람씩 떠나가는 일도 생겨요. 슬프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늙는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시간을 바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래도 부르고, 환자도 만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지난 세월에는 대중의 관심과 구설도 따랐다. 전 남편의 정치적 활동과 맞물려 주목받았고, 적극적인 성격과 거침없는 행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날을 어떻게 돌아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말을 아꼈다.

 

주혜란 박사는 2019년 모교 고려대에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며 장학금 10억원을 쾌척했다. 주 박사(왼쪽)가 정진택 총장과 기부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고려대 제공

“할 말은 많지만, 지금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젊었을 때는 의욕도 넘쳤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어요. 언젠가는 회고록을 통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과거를 굳이 부정하거나 미화하지 않겠다는 듯 담담했다. 지금은 지나온 시간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병실을 돌고,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고, 함께 노래하는 일이다.

28세에 국내 첫 여성 보건소장으로 공직에 뛰어든 뒤 75세에 다시 보건소장으로 돌아오기까지, 그런 그의 삶은 한 가지 다짐을 향해 이어져 왔다. 의사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나이는 들었고 세월은 흘렀지만, 그 다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인터뷰 말미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주혜란, 참 멋지게 산 사람이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주혜란 박사는…

 

●1948년 서울 출생 ●무학여고·고려대 의과대 졸업 ●일본 쇼와대학 의학박사 ●1976년 충북옥천 보건소장(한국 최연소 최초 여성 보건소장) ●1979∼1992년 서울시 강동·용산·강남보건소장 ●1992∼1995년 미국국립보건원(NIH) 역학 자문위원, 조지워싱턴 보건대학원 교환교수 ●2013년 한국법의학회 부회장 ●2015년 대한노인회 의료봉사단장 ●2018년 국가원로회 여성위원장 ●2019년 서울시노인회 여성회장 ●2020년 대한보건협회 제34회 보건대상 수상 ●2022∼2024년 강원도 양구보건소장 ●2024년∼ 영월요양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