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산업 혁명으로 공급 부족을 겪는 메모리만큼 품귀 현상을 겪는 제품이 있다. 바로 ‘전선’이다. AI 데이터센터 확장과 노후 전선 교체 수요가 맞물려 세계 곳곳에서 한국산 전선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수요가 폭증하는 데다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 수입 장벽을 친 덕에 당분간 한국산 전선 호황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일 전선업계에 따르면 국내 전선 양강으로 꼽히는 LS전선과 대한전선의 올해 상반기 누적 수주잔고만 13조6000억원가량에 달한다. 이 중 LS전선은 9조5535억원어치를 수주했는데, 3분기 실적이 더해지면 10조원이 넘어설 전망이다. 대한전선은 4조629억원으로 처음 4조원대를 기록했다.
일감이 끊임없이 몰리는 덕분에 실적도 상승세를 탔다. LS전선 자회사인 가온전선과 LS에코에너지는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대한전선도 올해 2분기 매출 1조1987억원, 영업이익 608억원을 거두며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분기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경쟁 업체인 중국과 일본 기업들의 해외 수출이 막힌 것도 ‘K전선 열풍’에 한몫한다. 중국 기업의 경우 주요 전선 시장인 북미와 유럽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안보상 이유로 중국산을 배제한 탓이다. 국가 핵심 인프라인 전력망에 중국산을 쓰지 않겠다는 각 정부의 지침에 가격 경쟁력을 앞세우던 중국 업체의 공세는 힘을 잃었다. 일본도 위협이 되지 못하고 있다. 스미토모전공과 후루카와전공 등 일본 업체들은 자국 수요를 감당하기에도 벅차 해외 물량까지 챙길 여력이 안 된다.
AI 확산으로 송배전망 교체 수요가 여전히 많은 데다 전선업종은 후발 주자가 선뜻 손대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전선의 호황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전선업계 관계자는 “전선 산업은 설비와 재료를 사들이기 위한 비용이 워낙 많이 들고, 기술 개발 난도가 높아 후발주자가 뛰어들기 어렵다”며 “공급이 단기간에 늘어나기 어려운 만큼 현재의 호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