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에 임광현 국세청장을 깜짝 임명한 후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행정능력을 인정받은 것과 별개로 그가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참모형’이 아니라 지시를 가감없이 전달하는 ‘비서형’이라는 평가에서다. 바꿔 말하면 지금 이 대통령에겐 신뢰할 수 있는 측근의 진심 어린 쓴소리가 절실하다는 의미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로 떨어진 가운데 정부가 추진한 주요 정책들이 줄줄이 후퇴하거나 백지화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적용, 촉법소년 연령 하향,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농지 전수조사, 비거주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감면 축소,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정책은 대체로 이 대통령이 엑스(X)를 통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면 소관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정책을 추진하다가 반발과 저항에 부딪혀 후퇴 또는 번복되는 과정을 거쳤다.
정책을 수정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무능의 결과도 아니다.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는 것보다 여론과 현실을 반영해 방향을 바꾸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문제는 번복 자체가 아니라 번복하게 된 의사 결정 과정이고, 그 시작이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형 리더십과 과도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정치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엑스(X·옛 트위터)에 화두를 던지면 해당 정부 부처가 그 의중에 따라 실행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 반복되면서 대통령의 관심이 정책 추진 동력이 아니라 관료 조직을 재촉하는 신호로 비쳤다. ‘속도전’, ‘전격전’ 등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단어까지 동원되면서 정책의 완성도보다 대통령의 발언에 얼마나 신속하게 반응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9일 국정감사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상장 일정을 맞추기 위해 심사를 서둘렀다고 인정했다. 고위험 상품을 다른 ETF 평균 상장 기간(62일)의 절반도 안 되는 29일 만에 졸속 상장한 것이다. 그 결과 코스피 하락은 가팔라졌고, 국내 투자자들은 수조원의 손실을 봤다. 숙의를 거치지 않은 정책이 얼마나 큰 혼란과 비용을 초래하는지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국무회의 생중계 논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29일 도입된 국무회의 생중계는 대통령 모두발언만 공개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정책 보고와 토론 과정을 가감없이 공개해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대통령의 업무 장악력을 보여준다는 호평을 받았다. 실시간 공개에 따른 긴장감이 오히려 정책 책임감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대통령의 송곳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한 일부 공직자들은 화제의 인물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반대로 대통령의 질의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해 공개적인 질책을 받고 얼마 후 인사조치되거나 후유증을 오래 앓았다는 공직자도 적지 않다.
국민과의 소통도 좋지만 국정 공개가 무조건 정책의 투명성과 신뢰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발언이 실시간으로 평가되고 SNS에서 공격과 희화화의 대상이자 먹잇감으로 끊임없이 소구되는 환경에서 장관들이 솔직하게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말처럼 쉽겠는가.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 공개가 장관들의 소신 발언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가짜뉴스라고 일축하며 공개 원칙을 고수했다. 장관 19명 중 절반 이상이 참석한 총리 만찬에서 나온 건의도 ‘허위주장’으로 치부하는 대통령 앞에서 ‘하실 말씀 다 하시는’ 공직자가 얼마나 될까. 지난 19일 취임 500일 기념 출입기자 차담회에선 SNS를 자신의 ‘목숨줄’, ‘숨구멍’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대통령에게 국무회의 생중계나 SNS를 줄이라는 것은 “목숨줄을 내려놓으시라”고 말하는 셈이 돼 버렸다.
대통령이 SNS에 목을 매고 참모들이 확성기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설익은 정책이 번복·후퇴하는 일이 반복되고, 이는 결국 정책의 동력과 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