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상표 등록 과정에서 종이 형태의 등록증이 나오지 않자 변리사가 사기를 쳤다고 의심한 70대 남성이 강남 한복판 특허법인 두 곳에 연쇄 방화를 저질렀다. 피의자의 왜곡된 앙심에서 비롯된 이번 범행으로 1명이 심정지 상태에 빠지고 18명이 다쳤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20일 현주건조물방화치상 혐의로 70대 남성 A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A씨는 과거 한 특허법인에 해외 상표 등록을 의뢰했으나, 해당 국가 제도상 ‘온라인 등록증’만 발급된다는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변리사가 자신의 상표를 가로채려 한다는 의심을 키워온 것으로 조사됐다.
◆ “변리사가 상표 훔쳐가 사기”…종이 등록증 집착이 부른 참극
A씨는 이날 오후 6시 15분쯤 수서경찰서로 압송되는 과정에서도 취재진을 향해 “특허 법무법인에서 사기를 쳤다”라고 소리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다.
A씨는 “2000년도에 내가 특허를 냈는데 사기를 쳤다”라며 특허법인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출력물을 직접 취재진에게 펼쳐 보였다. 해당 문건에는 ‘이 서류를 등록증으로 보시면 된다’라는 특허법인의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는 범행 준비 기간을 묻는 질문에 “한 3일 됐다”라고 답했고, 피해자들에게 할 말이 없느냐는 물음에는 “(특허법인에) 앞으로 사기 치지 말라고 해달라”고 주장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4년 전인 지난 2022년에도 불만을 품고 이날 불을 지른 두 건물을 찾아가 방화를 시도했다가 방화예비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7분 간격으로 표적 방화…200m 거리 특허법인 2곳 테러
범행은 치밀하게 계획됐다. A씨는 이날 오전 강서구 주거지 근처에서 인화물질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통 2개를 양손에 들고 강남으로 이동했다.
A씨는 낮 11시 54분쯤 역삼동 신명빌딩 3층 특허법인에 먼저 불을 지른 뒤, 곧바로 직선거리로 약 200m 떨어진 한양빌딩으로 향했다. 이어 낮 12시 1분쯤 한양빌딩 4층에 입주한 또 다른 특허법인 사무실에 추가로 방화했다. 불을 지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7분 안팎이었다.
A씨는 범행 직후 택시와 도보로 동대문구까지 이동한 뒤 지하철을 타고 도주했으나, 동선을 추적한 경찰에 의해 사건 발생 약 4시간 만인 오후 4시 16분쯤 서울 종로구 동묘앞역 인근에서 덜미를 잡혔다.
◆ 변리사 복도서 심정지 발견…사상자 총 19명 발생
이번 방화로 점심시간을 앞둔 건물 내부가 순식간에 화염과 유독가스에 휩싸이면서 대규모 인명피해가 났다.
신명빌딩 3층 특허법인 사무실 복도에서 변리사 B씨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병원으로 옮겨졌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던 B씨의 남편도 부상을 입었으며, 신명빌딩에서만 총 10명이 다치고 입주자 60여 명이 긴급 대피했다.
한양빌딩에서도 8명이 다쳤으며, 이 가운데 3명은 연기를 다량 흡입해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부상자들은 한양대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등으로 나뉘어 치료를 받고 있다. 한양빌딩 화재는 낮 12시 35분쯤, 신명빌딩 화재는 오후 2시 20분쯤 완전히 꺼졌다.
경찰은 A씨가 특허 관련 분쟁에 악감정을 품고 사전에 인화물질을 준비해 표적 방화를 감행한 것으로 보고, 현주건조물방화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