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남정훈 기자]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7년 4월7일.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살 청년이 한국 야구의 상징인 잠실 마운드에 섰다. KIA의 2007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순위로 지명된 그는 LG와의 잠실 원정 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9-1로 앞선 9회말 등판해 마해영에게 솔로포를 맞으며 1이닝 1실점. 훗날 ‘대투수’라 불리는 이의 시작은 다소 미약했다
10년이 흐른 2017년 10월30일. 그는 어느덧 KIA, 아니 KBO리그를 호령하는 전국구 에이스로 성장했다.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2차전(10월26일)에 선발 등판해 9이닝 동안 4피안타 2볼넷 11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거뒀다. 1-0 완봉승은 한국시리즈 최초였다. KIA가 3승1패로 앞선 5차전 7-6 리드 상황에서 맞이한 9회말. 6차전 선발로 내정되어 있었던 그가 마무리 투수로 깜짝 등판했다. 볼넷 2개(고의4구 1개 포함)에 3루수 김주형의 악송구 등으로 1사 만루 위기에 몰렸지만, 박세혁을 유격수 플라이, 김재호를 초구 포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KIA의 V11을 직접 완성했다. 1승1세이브. 한국시리즈 MVP는 당연히 그의 차지였다. 그렇게 잠실구장에서 전설을 써내려간 양현종(38) 이야기다.
그로부터 9년이 흐른 2026년 10월20일. 양현종은 LG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을 앞두고 취재진 앞에 섰다. 네일-올러 외국인 원투펀치에 이은 3선발 자리는 이름값으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양현종의 차지가 됐어야 했지만, 이범호 감독은 3차전 선발로 시라카와(일본)를 내고, 양현종을 4차전 선발로 내정했다. 그는 “4차전 선발로 결정된 순간, 2승1패 상황일지, 1승2패일지 생각했다. 다행히 2연승을 거뒀으니 오늘 끝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1982년 개장해 45년 간 한국야구의 상징이었던 잠실 마운드에 서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내일 제가 등판해서 이긴다는 보장만 100% 된다면 내일 던지고 싶은 마음이죠. 근데 오늘 지면 분위기가 넘어갈 수있으니까...오늘 몸 풀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프로 첫 등판도 잠실이었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제 손으로 직접 확정지은 것도 잠실이었으니까요.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나더라고요. 6년 뒤 잠실 돔구장에는...저는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고 있겠네요(웃음)”
KIA가 3차전을 13-1 대승을 거두면서 양현종의 잠실에서의 마지막 등판은 없었던 일이 됐다. 3전 전승으로 준플레이오프를 끝낸 KIA는 나흘 간의 꿀맛 같은 휴식을 갖게 됐다. 25일부터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리는 삼성과의 플레이오프는 다시 외국인 원투펀치부터 시작할 생각인 이범호 감독이다. 그는 3차전을 마친 뒤 “플레이오프 1,2차전 대구 원정은 네일과 올러로 시작해야죠. 현종이는 광주에서 등판을 준비시켜야죠”라고 플레이오프 선발 운영 청사진을 밝혔다.
준플레이오프는 후배들 덕분에 등판 없이 끝낸 양현종이지만, KIA가 준플레이오프에 직행할 수 있었던 것은 양현종의 헌신과 내려놓음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 12일 LG와의 정규리그 최종전, 사실상 3위 결정전이었던 이날 경기에 양현종은 선발로 나섰다. 1회부터 전력투구에 나선 양현종은 5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제가 항상 이닝 욕심이 있다보니 평소였다면 6회에도 던지겠다고 했겠지만, 그때는 제가 먼저 말씀드렸죠. 저보다 더 좋은 중간 투수들이 6회부터 나갔으면 좋겠다고. 저는 5회까지 생각해서 던졌기에 더는 힘이 없다고. 그날 경기 뒤 식사 자리에서 코치님이 제 말에 좀 울컥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올 시즌을 돌이켜보면 그 경기가 가장 뿌듯했던 것 같아요”
대투수 양현종, 그의 가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