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모비스가 95%가량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의 국산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국내 기업·기관과 협력 확대에 나선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완성차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만, 최근 전동화와 자율주행 확산으로 수요가 늘고 있는 차량 제어·구동용 반도체는 해외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모비스는 완성차와 반도체 기업, 정부·연구기관과 함께 개발부터 검증, 양산까지 이어지는 협력체계를 구축한 뒤 이르면 2029년 출시되는 현대차·기아 차량에 국산 시스템 반도체를 적용할 계획이다.
21일 경기 성남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2회 차량용 반도체 포럼 ‘오토 세미콘 코리아(ASK)’에서 현대모비스와 협력사들이 차량용 반도체 개발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제공
현대모비스는 21일 경기 성남시 더블트리 바이 힐튼 서울 판교 호텔에서 제2회 차량용 반도체 포럼 ‘오토 세미콘 코리아’(ASK)를 개최했다. 지난해 출범한 ASK는 자동차와 반도체 업계의 역량을 연결해 차량용 반도체 경쟁력과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협력 플랫폼이다. 이날 행사에는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기업·정부·학계 관계자 90여명이 참석했다.
차량용 반도체는 자동차의 각종 기능을 제어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데 쓰인다. 모터와 차체 등의 작동을 제어하는 MCU(마이크로컨트롤러), 전기차의 전력을 변환하는 전력반도체, 자율주행 연산을 담당하는 고성능 프로세서 등이 대표적이다. 차량용 반도체에는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부터 제어·연산 등을 담당하는 비메모리까지 모두 포함된다.
국내 기업들은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지만,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선 여전히 산업 기반이 취약하다. 독일 인피니언과 네덜란드 NXP, 유럽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일본 르네사스 등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한국 수출의 한 축인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이들 기업들로부터 차량용 반도체의 95%를 수입한다.
진입장벽도 높다. 차량용 반도체는 혹한과 고온 등 까다로운 주행환경에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제동·조향 등 안전에 관련된 부품은 고장에 대응하는 기능안전 설계도 중요하다. 칩을 개발하더라도 제어기와 실제 차량에서의 검증을 거쳐야 해 설계 역량만으로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
현대모비스는 이 같은 진입 장벽을 넘기 위해 협력 범위를 넓혔다. 올해 ASK 참여 기업·기관은 지난해 27곳에서 53곳으로 늘었다. 삼성전자, SK키파운드리, LX세미콘, 동운아나텍 등과 함께 소프트웨어, 설계자산(IP), 패키징, 시험평가, 기능안전 분야까지 참여해 개발 전 과정의 협업을 추진한다. 이날 SK키파운드리, 중소 팹리스 4개사, 지원기관 4곳과 차량용 전력반도체 공정·평가 생태계 구축 업무 협약도 체결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년간 국내 협력사들과 시스템반도체 분야 협업 과제 19건을 발굴했으며, 이 중 13종의 개발에 착수하고 9종은 적용을 목표로 하는 차종까지 선정했다. 앞으로 검증을 거쳐 실제 차량 적용과 양산으로 연결한다는 방침이다.
이 사장은 “차량용 반도체의 높은 진입장벽을 개별 기업이 홀로 감당하지 않도록, 각자의 장점을 연결하고 개발부터 검증과 양산까지 함께 책임지는 전 주기 협력 구조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차량용 반도체 개발부터 인증, 양산, 수요 확보까지 상용화 전 과정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현장 축사에서 “차량용 반도체와 같은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우리 기술이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막힘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더 촘촘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제조, 평가, 실증 여건이 취약한 차량용 전력반도체 분야에서 팹리스가 설계한 제품을 파운드리가 만들고, 전문기관이 평가한 뒤 수요기업이 실증까지 이어가는 국내 전주기 생태계가 갖춰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산업부와 현대차, 현대모비스, LG전자가 주도하는 ‘차량용 반도체 원팀 TF’도 이날 출범했다. TF는 수요·공급 기업 간 상시 협력채널로, 반도체 공동 개발과 수요처 확보를 뒷받침하고 정부 지원과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반도체 신뢰성 검증과 평가를 지원할 ‘천안 차량용 반도체 지원센터’ 건립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며,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