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봄이다. 파리 생제르맹(PSG)의 공격수는 평소처럼 훈련장에 나갔다. 경기에 뛰었고 골도 넣었다. 4월이 가고 5월, 6월이 지났다. 그런데 석 달 치 월급은 통장에 들어오지 않았다.
킬리안 음바페(27). 세계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선수 중 한 명이 석 달을 월급 없이 뛰었다. 재계약 대신 떠나는 길을 택한 대가였다.
벽을 가득 채운 호날두
음바페는 파리 북동쪽 변두리 봉디에서 자랐다. 이민자 가정이 모여 사는 동네다. 아버지는 동네 축구 클럽 코치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클럽에서 공을 찼다. 실력이 앞서 늘 형들과 뛰었다.
어린 음바페에게는 우상이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 방 벽이 호날두 사진으로 가득했다.
재능이 알려지자 유럽 빅클럽들이 그를 데려가려 나섰다. 레알도 그중 하나였다. 13세 때 마드리드에 초청받은 음바페는 훈련장에서 우상을 만났다. 호날두와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레알은 그를 원했다. 음바페는 모나코를 택했다. 호날두가 있는 팀에서 1군 자리를 얻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몰랐다. 당장 뛸 수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18세에 모나코를 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레알이 다시 찾아왔다. 음바페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대신 고향을 택했다. 행선지는 PSG였다. 이적료는 1억8000만 유로(약 2900억원)였다.
꿈을 고른 대가
PSG 유니폼을 입은 이듬해, 19세 음바페는 러시아 월드컵 결승에서 골을 넣었다. 10대가 월드컵 결승에서 골을 넣은 건 펠레 이후 60년 만이었다. 프랑스는 우승했다. 그는 대회 보너스를 전부 아픈 아이들을 돕는 단체에 내놨다.
PSG에서는 7시즌을 뛰며 구단 역대 최다 골을 넣었다. 계약 만료가 다가오자 구단은 연봉 1억 유로(약 1600억원)가 넘는 계약을 내민 것으로 알려졌다. 레알이 부른 연봉은 PSG 제안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음바페는 레알을 골랐다. 어린 시절 방 벽에 호날두 사진을 붙여 두고 꿈꾸던 팀이었다.
PSG는 그해 봄부터 월급을 주지 않았다. 음바페가 떠나는 조건으로 보너스를 포기하기로 약속했다는 게 구단 주장이었다. 서면 합의서는 없었다. 음바페는 소송을 냈다. 변호인 델핀 베르헤이덴의 말은 짧았다.
“직원 한 명과 돈을 안 주는 고용주의 싸움일 뿐입니다.”
지난해 12월 파리 노동법원은 PSG가 6100만 유로(약 1000억원)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을 구단 홈페이지 첫 화면에 한 달간 게시하라는 명령도 함께 내렸다. 올해 2월, PSG 홈페이지 경기 일정 아래에 ‘법적 고지’ 한 줄이 올라왔다.
19세에 받은 월드컵 우승 보너스는 기부했다. 25세에 받지 못한 월급은 법정으로 가져갔다.
하나, 둘, 셋, 할라 마드리드
2024년 7월 레알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8만 관중 앞에서 음바페는 스페인어로 말했다.
“어릴 때부터 마드리드에서 뛰는 꿈을 꿨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 있습니다.”
연설 끝에 그는 관중과 함께 외쳤다.
“하나, 둘, 셋, 할라 마드리드!”
15년 전 호날두가 같은 자리에서 입단하며 외친 레알의 응원 구호였다. 열 살의 음바페는 그 장면을 가족과 함께 지켜봤다.
첫 시즌 44골을 넣었다. 호날두가 레알 데뷔 시즌에 넣은 골보다 많았다. 올여름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득점왕에 올랐다. 월드컵 통산 22골, 메시를 넘어선 역대 최다다.
아직 넘지 못한 게 하나 있다. 발롱도르다. 호날두는 다섯 번 받았다. 음바페는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며칠 뒤 영국 런던에서 2026 발롱도르 수상자가 발표된다. 음바페는 후보 30인에 들었다.
어린 음바페의 방 벽에는 호날두가 있었다. 지금 그의 고향 봉디의 벽에는 음바페가 있다. 그 아래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네 꿈을 사랑하라. 그러면 꿈도 너를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