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진의 선견지명] 경북 영덕군 병곡리/자래실 이야기

‘주영편’(정동유, 1805)에서는 자전(字典)에 없는 한국 한자(즉 국자(國字))들을 여럿 보이고 있는데 그 가운데 “음죽(지금의 음성) 지역에 있는 ‘迲村’”이라는 지명은 현재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동성리 자래마을’에 대한 기록이다. ‘자래마을’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자래리(自來里)’로 독립된 행정구역이었던 것을 일제강점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월면 동성리에 포함되었다. 흔히 ‘자래(自來)마을’로 쓰는데 “자래실” 혹은 “자네실”이라고도 한다. 민간어원적 설명으로는 이곳이 옛날 한양(서울) 다니는 큰 통로이기 때문에 “…오고가는 길손과 선비들이 동네 느티나무 밑에 와서 쉬어가게 마련이다. 또 여행자들의 참(站)을 대는 목표지이기도 하며 숙박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스스로 찾아온다 하여 스스로 자(自)자와 올 래(來)자, 집 실(室)자를 써서 자래실이라 하던 것이 어느덧 자네실이 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믿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경북 영덕군 병곡(柄谷)리라는 마을의 이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병곡(柄谷)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이곳 지형이 ‘자리(자루)’와 같이 되었으므로 ‘자리실’, ‘자래실’, 또는 ‘병곡(柄谷)’이라 한 것이니, 한자 ‘자루 병(柄)’과 계곡을 나타내는 신라말 ‘실[谷]’의 관계를 고려하면 이 이름의 연원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병곡(柄谷)’이라는 마을의 이름은 16세기 중기(1550년경)인 명종(明宗) 연간에 당시 영해부사(寧海府使) 장응두(張應斗)가 명명했다 하는데, 이는 한자화의 문제이고 ‘자래실’이라는 이름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곳 ‘자래실’도 ‘주영편’의 ‘迲村’과 같은 지명인 것이다.

여기서 ‘迲’은 ‘자래 겁’이라는 뜻으로, 한국에서 만든 한자로 한국에서만 쓰이는 국자(國字)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음죽현 서쪽 10리(현재의 이천시 설성면 부근)에 迲村處(잘아촌처)가 있다면서 迲은 고금의 운서에 없는 글자이며 본국의 방언에 풀을 섶같이 묶은 것이 잘아(자래)이며 玆(자), 乙(을), 阿(아) 세 글자를 합해 훈으로 삼는다(즉, 잘아=자래)고 하였다.”고 하였고, ‘청장관전서’에서는 “쇠줄로 땔나무를 묶어서 1迲으로 세며 음훈이 없고 ‘자래’라고 칭하며 ‘여지승람’에 간성(杆城)의 별칭이 迲城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여지승람에 간성(杆城)의 별칭이 迲城으로 되어 있다’는 말은 또 다른 국자 ‘?’와 혼동된 것으로 여겨진다.
 

김양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