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중심 국제질서 맞서 출범 장기적 비전·가치 공유엔 한계 응집력 있는 행동 쉽지 않지만 글로벌 정치 주요 변수로 작용
주지하는 바와 같이 ‘브릭스’는 2001년 골드만삭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짐 오닐이 작성한 투자 보고서에서 신흥 투자처로 떠오르던 브라질, 러시아, 인도, 그리고 중국을 BRICs로 지칭하면서 생겨난 용어다. 한편 이 용어의 원산지가 러시아라는 주장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따르면 러시아가 1990년대에 제안한 러시아, 인도, 중국 등 3개국 간 전략적 협력체(RIC)가 브릭스의 효시라는 것이다.
어쨌든 2006년 유엔총회를 계기로 4개국 외무장관 간 비공식 회의가 시작됨으로써 다자협력체로서의 BRICs가 닻을 올리게 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미국 등 서방 주도의 경제, 금융 질서에 대한 불만이 확산함에 따라 이들 신흥국가는 미국을 견제하고 국제질서를 다극화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BRICs 정상회의가 열리게 된다. 2009년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제1차 정상회의가 개최되었고 2010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합류하면서 오늘날의 브릭스(BRICS) 체제가 되었다.
장덕준 국민대 명예교수·유라시아학
브릭스는 다극화를 지향하며 서구 중심의 국제질서 개혁을 목표로 출범했다. 그런 맥락에서 브릭스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세계무역기구(WTO) 등 주요 국제기구의 평등한 운영을 주창해 왔다. 또한 브릭스는 대륙별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확대 개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브릭스는 서방 주도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독자적인 금융제도의 구축을 추구한다. 2015년에는 각 회원국이 균등 납부한 500억달러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브릭스 신개발은행(NDB)이 출범했다. 이후 NDB는 회원국들의 인프라 건설 등을 지원하고 있다.
브릭스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회원국 간 입장이 엇갈린다. 우선 브릭스의 중추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는 이 조직을 반서방적 협력체로 발전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 워싱턴의 패권적 행태가 불만인 베이징과 모스크바는 브릭스를 통해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지향한다. 반면에 인도와 브라질, 남아공 등 여타 회원국들은 서방으로부터의 일정한 자율성을 추구하면서도 서방과의 교류·협력을 유지함으로써 실리를 얻으려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그들은 브릭스를 ‘반서방적’이라기보다는 ‘비서방적’ 협력체로 인식한다.
더구나 2024년 이후 기존의 5개 회원국에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에티오피아, 아르헨티나 등 6개의 신규 회원국의 가입이 결정됨으로써 브릭스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대항하는 반서방적 성격이 더 옅어지게 되었다. 과거 비동맹국의 전통을 이어받은 인도는 반서방 노선보다는 자국의 외교적 자율성 제고에 더 관심이 있다. 또한 인도는 인도·태평양 협력을 통해 미국과 안보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미국과 안보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이처럼 회원국 간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지난 9월12~13일에 열린 인도 뉴델리 브릭스 정상회의의 공동성명은 미국의 이란 침공을 간접적으로만 언급하는 선에 머무르게 되었다.
요컨대 브릭스는 서구의 지배적 영향력을 견제하고 외교적 자율성을 추구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음에도 장기적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더구나 회원국 간 상이한 기대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구심점이 없어 효과적인 의사결정과 응집력 있는 행동이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브릭스는 미국과 서구 국가들의 영향력을 제어하고 기존 국제레짐의 대안을 모색해 왔다는 점에서 국제정치 무대의 주요 행위자이자 변수임에 틀림없다.
외교적 지평 확대와 자율성 제고를 꾀하는 대한민국은 브릭스 국가들의 대내외적 협력 의제와 협력 방식 등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미국에 대한 브릭스 국가들의 입장, ‘정치·안보 우선’과 ‘경제 우선’을 놓고 러·중과 인도·브라질·남아공 등 주요 회원국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견과 그것을 조율하는 과정 등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브릭스 국가들의 서방에 대한 정책과 지정학적 변동에 대한 대응, 그리고 그들과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관계 등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분석은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지향하는 대한민국호의 우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