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는 총탄 한 발 쏘지 않고 상대를 공격하는 심리전 무기다. 적의 사기를 꺾고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 총성 없는 무기는 미군이 1989년 12월20일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축출하기 위한 작전에도 동원됐다. 노리에가가 파나마시티의 교황청 외교공관으로 피신하자 미군은 주변을 포위하고 대형 확성기로 록 음악을 크게 틀었다. 미국 유명 보컬 그룹 마사 앤드 더 반델라스의 ‘Nowhere to Run’(도망갈 곳이 없다)이라는 곡이다. 자신의 처지를 조롱하는 노래를 들으며 노리에가는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그는 1990년 1월3일 결국 투항했다.
베트남전 당시인 1968~1970년 미군은 확성기로 귀신의 울음소리를 방송하는 기상천외한 심리전을 벌였다. 이른바 ‘떠도는 영혼 작전’이다.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의 전의를 꺾고 투항을 유도하려는 목적이었다. 베트남인들이 고향을 떠나 전사한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하면 영혼이 구천을 떠돈다는 믿음에 착안했다. 미군은 남베트남인들을 동원해 죽은 병사의 영혼이 흐느끼며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연기하게 했다. 여기에 기괴한 음향 효과를 더해 야간에 헬기와 선박에 설치한 확성기로 틀었다. 일부 베트콩의 투항 사례가 있었으나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2024년 가자 전쟁에서는 이스라엘군이 드론 확성기로 아기 울음소리와 여성의 비명을 틀어 주민을 집 밖으로 유인한 뒤 드론 총격을 가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국제인권단체 유로메드 인권모니터가 공개한 내용이다. 사실이라면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려는 인간의 본능마저 살상에 악용한 것으로 용서받기 어렵다. 확성기가 단순한 심리전 도구를 넘어 민간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무기로 변질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이 22일 군사분계선(MDL) 월선에 대응한 한국군의 경고사격에 반발하며 전 국경선에서 대남 확성기가 수일 내 대기상태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군도 북한의 추가 도발 시 대북 확성기 재개를 포함해 비례적 대응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확성기 방송이 군사충돌의 도화선이 될까 우려스럽다. 확성기는 총성 없는 무기이지만, 그 공방의 끝이 언제나 총성 없는 전쟁인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