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과로로 숨진 고(故) 장덕준씨의 산업재해 은폐 의혹과 관련해 김범석 쿠팡Inc 의장(당시 대표이사)의 부적절한 지시 내용을 확인했다. 다만 해당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났고 구체적인 법 위반은 성립하지 않아 불기소 의견으로 공소청에 송치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3월 시작한 쿠팡 계열사 노동관계법 위반 의혹 기획감독 및 산재 은폐 고발 사건 수사 결과를 7개월 만인 22일 발표했다. 감독 결과 쿠팡과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쿠팡로지스틱스 물류센터 등 총 106개소에서 206건의 노동관계법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노동부는 이 중 61건은 사법처리하고, 145건에 대해서는 총 19억6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유형별로는 산업재해조사표를 법정 기한 내 제출하지 않은 사례 25건을 적발해 약 1억7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컨베이어 방호조치 미실시, 지게차 충돌방지 조치 미흡 등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사항도 총 178건 적발됐다.
2020년 말 유족급여 신청에 따른 근로복지공단의 조사가 시작되자 쿠팡 측은 최초 고인의 모습이 담기지 않은 CCTV 영상을 제출했다. 관계자가 고인의 근무환경에 대해 실제 영상 내용과 다르게 진술한 사실도 드러났다.
노동부는 다만 부적절 행위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산안법상 산재 은폐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영민 노동부 안전보건감독국장은 “산재 은폐죄가 성립하려면 산재 발생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은폐한 행위가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장씨 사망 당시 중대재해 발생 보고가 이뤄졌고, 산재 승인 과정에서 방해 행위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소시효도 지났다.
산안법상 산재 은폐 혐의의 공소시효는 5년이다. 장씨가 숨진 2020년 10월을 기준으로 공소시효가 지나 노동부는 해당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기로 했다. 7개월간의 수사 끝에 의혹의 실체를 밝혀내고도 정작 형사적 책임은 묻지 못하게 된 셈이다. 이에 공소시효 연장 및 처벌 수위 강화 등 산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산안법 위반은 양형도 중대재해여야 조금 높은 수준이어서 다른 민형사상 법률보다 양형과 공소시효가 낮다는 게 노동계 학회의 의견”이라고 짚었다. 그는 산안법의 양형과 공소시효 논의 필요성이 있다며 “적어도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것에 대해서는 일반 법률에 비해 양형과 공소시효를 높여야 예방적 시그널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노동부가 쿠팡에 면죄부를 줬다며 “노동부의 좁디좁은 해석이 산재 은폐죄를 빈껍데기로 만들고 있다”고 규탄했다.
공권력 남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관점도 있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법을 정의감 관점에서만 볼 수는 없어서 공소시효 연장 논의는 신중히 해야 한다”고 했다.
감독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소장은 “쿠팡이라는 하나의 기업을 기획 감독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3∼5개월이면 발표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7개월 후에나 발표했다는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고, 오 국장은 “법적 쟁점 등을 검토를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