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영구적 국경선 고착화 행보… ‘충돌 방지용’으로 정당화 노려 [남북 긴장 고조]

잇단 강경책 꺼내는 속내는

‘김정은 대업’ 반드시 관철 과제
“주권 행사” 주장 속 통로 차단
軍 경고방송에 작업 진행 차질
물리적인 충돌 피해야 ‘속도전’
심리전 수단으로 남남갈등 유도
李정부 정치 부담 키우기 계산도

북한이 연일 우리 군의 경고방송, 경고사격 등에 반발하며 군사적 대응과 대남 확성기 재가동을 거론했다. 표면적으로는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피해 발생 시 보복에 나서겠다는 협박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명령에 따라 이른바 ‘남부 국경요새화’ 작업을 관철해야 하는 동시에 작업 과정에서 실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는 북한 당국의 딜레마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장이 이달 중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를 예고한 22일 인천 강화군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개풍군 접경지역에서 북한군이 '국경선 요새화' 작업의 일환으로 축대를 설치하고 있다. 뉴시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22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새로운 대응수단’이 이미 대기태세에 들어갔고, ‘대(對)한국 확성기’는 조만간 대기상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담화에서 “우리의 전술적사냥조들은 새로운 진지들을 차지하고 있으며 10월 중으로 대한국심리전확성기들이 전 국경선에서 가동상태에 들어가게 될것 ”이라고 밝힌 데 이어 연이틀 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특히 자기네들의 ‘국경 요새화 작업’으로 “조한(남북) 사이의 군사적 충돌 위험은 현저히 낮아질 것”이라고 한 것이 눈길을 끈다. 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입각해 사실상 영구적 국경선을 고착화하려는 행보를 ‘충돌 방지용’으로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2024년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남북 간 연결 통로와 도로를 차단하는 등 물리적 단절 조치를 추진해 왔다. 남부국경 요새화 역시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으로, 북한은 요새화 작업을 자국의 주권 행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별개의 국가인 남북한의 접촉 자체를 막는다면 군사적으로 충돌할 일도 없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남북 간 군사분계선(MDL)에 대한 인식 차가 있는 데다 위기 상황에서 소통할 체계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일방적인 요새화가 ‘군사적 충돌 위험성 해소’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MDL을 남한이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는 만큼, 북한이 자국 기준에 따른 작업을 강행할 경우 남북 간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北 인접 해역서 도서방어종합훈련 20일 해병대 특수수색여단 장병들이 소형고무보트(IBS)를 이용해 백령도로 이동하고 있다. 해병대사령부, 서북도서방위사령부는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백령도, 연평도 등 북한과 인접한 서북도서 일대에서 2026년 후반기 도서방어종합훈련을 실시했다. 해병대사령부 제공

이런 상황은 국경요새화 작업을 계속 진행해야 하는 동시에 군사적 충돌은 피해야 하는 북한 지도부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김 위원장이 지시한 영토주권 행사이자 ‘성업’, ‘대업’으로 규정한 국경요새화는 북한으로선 반드시 관철해야 하는 과제다. 우리 군의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으로 작업에 차질을 빚고 있지만, 이를 차단할 뚜렷한 대응책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맞사격으로 응수할 경우 남북 간 화력 교전으로 번져 요새화 작업 자체가 오히려 전면 중단될 수 있다”며 “공사를 끝내라는 명령을 이행하려면 역설적으로 우리 군과의 물리적 전면 충돌을 피해야만 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북한이 대남 확성기 재가동을 거듭 예고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된다. 실제 무력 대응에 나서는 대신 심리전 수단을 앞세워 남측을 압박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란 분석이다. 확성기 방송은 직접적인 무력 충돌에 비해 물리적 충돌 위험이 낮고 대남 강경 대응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다. 대남 방송이 재개될 경우 접경지역 주민들은 소음과 수면 방해 등 생활상의 피해를 겪을 수 있다. 북한이 이러한 불안과 민원을 자극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을 키우고, 남남갈등을 유도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접경지역 긴장 고조 책임을 이재명정부 대북 정책으로 돌려 정치적 부담을 키우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가 비례적 조치로 검토될 가능성에 대해 “관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불과 1년여 전 서로를 향해 확성기를 틀며 남북 주민 모두가 참기 어려운 고통을 경험했던 과거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김 부장 담화와 관련해서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긴장과 충돌의 위험을 키우는 행위는 즉시 중단돼야 한다”며 “남북 간 긴장과 충돌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 해결방안은 군사분계선에 대한 남북의 입장을 일치시키고, 평화적 관리를 위한 소통체계를 하루빨리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