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피해 땅속으로… 러·우크라군, 지름 1.2m 가스관서 격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의 위협으로 지상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옛 소련 시절 건설된 가스관이 새로운 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군이 수㎞에 걸친 지하 가스관을 통해 우크라이나군 후방에 침투하자 우크라이나군도 관로에 진입해 기관총과 무인지상차량까지 동원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북부 격전지 쿠피안스크 인근에서 이 같은 지하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군은 올해 초부터 지하 가스관을 따라 이동해 수㎞ 떨어진 우크라이나군 전선 후방까지 침투했다. 지상에서는 드론과 포병의 감시·공격에 노출되지만 지하 관로를 이용하면 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옛 소련 시절 유럽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된 광범위한 관로망이 침투 경로로 활용된 것이다.

 

러시아군은 관로에 구멍을 뚫고 지상으로 올라와 드론 공격을 감행한 뒤 다시 지하로 사라졌다. 우크라이나군은 처음에는 출입구를 포격하거나 드론으로 파괴했지만 러시아군이 새로운 통로를 만들면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제13하르티야여단의 볼로디미르 데흐탸로우 대변인은 이를 “두더지 잡기 게임과 같다”고 표현했다.

 

결국 우크라이나군은 직접 지하로 진입했다. 병사들은 지름 약 1.2m의 좁은 가스관에서 거의 일렬로 이동하며 전투를 벌였다. 러시아군은 관로 곳곳에 기관총과 모래주머니로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관로 옆과 아래에는 병사들이 수개월씩 생활할 수 있는 거점까지 마련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폭발물을 실은 무인지상차량(UGV)과 원격 조종 중기관총으로 대응했다. 양측 병력이 불과 4m 거리에서 대치하기도 했다. 하르티야여단의 한 관계자는 “적 한 명을 사살하면 바로 뒤에 또 다른 병사가 있었다”고 전했다.

 

가스와 시신에서 발생하는 악취가 심해 병사들은 방독면을 착용해야 했다. 군복에 밴 냄새를 없애려고 식초로 여러 차례 세탁할 정도였다. 하르티야여단은 쿠피안스크 인근 가스관에서 러시아군 30명 이상을 생포하고 100명 이상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극도로 위험한 환경이지만 일부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드론 공격이 끊이지 않는 지상보다 지하 전투를 선호한다고 지휘관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하전은 제1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에서도 활용됐으며 최근에는 가자지구의 하마스 땅굴에서도 중요성이 부각됐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마크 캔시언 고문은 “미사일과 드론 같은 정밀무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지하전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