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던 할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손녀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전 인공지능(AI) 애플리케이션에 살인 관련 질문을 하고 관련 영상을 시청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는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1부(최경서 부장판사)는 23일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노모(24)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존속살해 혐의 대신 존속상해치사죄를 인정했다.
노씨는 함께 거주하던 조부와 갈등을 빚던 중 주거지에서 과도로 조부의 왼쪽 어깨 뒤쪽을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노씨가 범행 전부터 조부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었고, AI에 살인 관련 질문을 하거나 관련 영상을 시청한 점 등을 근거로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노씨는 범행 전 AI 애플리케이션에 ‘누군가를 패고 싶을 때 참는 법’ 등을 질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약 한 달 전에는 메모장에 조부의 이름과 함께 욕설을 적고 ‘무능력하면서 자신을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한다’는 취지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같은 정황만으로 살해 동기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AI에 대한 질문은 2개에 불과했고, AI는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권하거나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을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노씨가 시청한 영상 15건에 대해서도 “각 영상의 실제 시청 시간이 확인되지 않았고, 영상 역시 복수심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라는 내용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알고리즘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영상을 살인 범행과 연결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판단했다.
노씨가 조부에 관해 작성한 메모에는 ‘복수하는 것은 내가 잘되는 것밖에 없다’는 내용도 담겨있어 재판부는 이를 두고 노씨가 조부와의 갈등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했다. 노씨가 유학을 목표로 조부와 동거하며 주거비를 절감해 온 점도 판단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자신의 장래를 모두 포기하면서까지 조부를 살해할 동기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유해 물질 구매 정황에 대해서도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경험과 과거 자해 시도 등을 고려하면 자신을 해칠 목적으로 구매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흉기로 찌른 부위와 범행 이후 행동도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운 근거로 제시됐다. 재판부는 노씨가 조부와 다투다가 자신의 방으로 피했으나 조부가 계속 문을 두드리며 공격적인 행동을 하자 이를 멈추게 하려고 우발적으로 흉기를 들었다고 판단했다. 또 노씨가 범행 직후 119에 신고하고 구급대원의 지시에 따라 상당 시간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점도 고려했다.
다만 노씨가 흉기로 조부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은 무겁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일시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인될 수 없는 반사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노씨가 초범이고 범행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점, 조부모의 잦은 다툼을 말리는 과정에서 갈등이 누적됐으며 피해자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 사정, 유족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참작했다.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 법정형의 하한인 징역 5년을 선고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