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끝나지 않은 조세이탄광 희생자 찾기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의 해저 탄광에서 유해가 발견된 것은 지난해 8월이었다. 1942년 ‘조세이 탄광’ 참사가 일어난 지 83년 만이었다. 바닷속에 남아 있던 뼛조각과 두개골은 희생자들의 존재를 다시 세상에 드러냈지만, 유해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외교부는 25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長生)탄광에서 발굴된 유해 5점이 남성 2명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난 8월 발굴된 유해 4점은 동일 남성 1명, 올해 2월 발굴된 유해 1점은 또 다른 남성 1명으로 분석됐다. 외교부는 “한일 양국 정부가 각각 보유한 유족 DNA와 대조한 결과 가족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83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유해는 아직도 그 이름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상황이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조세이 탄광 갱구(坑口) 광장 인근에 지난 2월 2일 안전을 기원하는 신사가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조세이탄광에서 참사가 발생한 것은 1942년 2월 3일이다. 일본 혼슈 서부 야마구치현 우베시 해안에서 약 1㎞ 떨어진 해저 갱도에 물이 유입되면서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모두 183명이 숨졌다. 조선인 희생자가 전체의 약 74%를 차지한다. 조세이탄광 사고는 단순 탄광 사고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본의 탄광 노동 현장에서 희생된 역사적 사건이라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자료에 따르면 조세이탄광에는 1939~1941년 조선인 노동자 1258명이 동원됐다.

 

희생자들의 유해는 오랫동안 바닷속에 남아 있었다. 사고의 기억을 되살리고 유해를 수습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지만, 희생자들을 찾아내고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은 오랜 시간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변화의 계기는 시민들의 움직임에서 시작됐다. 1991년 일본에서 결성된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水非常)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은 사고 실체를 규명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활동을 이어왔다. 이 단체는 크라우드펀딩으로 잠수 조사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했고, 마침내 지난해 8월 해저에서 대퇴부와 두개골 등을 포함한 유해 4점을 발견했다. 오랜 시간 바닷속에 잠겨 있던 희생자들의 흔적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발굴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유해 발견은 한일 양국 정부의 신원 확인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올해 1월 13일 나라현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잠수 조사를 통해 수습한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첫 유해 발견 이후 약 5개월 만에 양국 정상이 희생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협력에 뜻을 모은 것이다. 올해 2월에는 두개골 1점이 추가로 발굴·수습됐다.

 

희생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기까지는 유해 발굴 뿐 아니라 넘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발굴된 유해의 DNA를 희생자 유족의 검체와 대조하기 위해서는 유족 DNA를 모두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외교부는 “현재 기준 조세이탄광 희생자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인 희생자 136명 중 101명의 유족을 확인했고, 희생자 98명의 유족에게서 DNA가 확보된 상태”라며 “앞으로도 희생자 신원 확인을 위해 유족 DNA를 추가로 확보하고 일본 측과 긴밀히 소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