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정말 선진국인가?”
전쟁의 폐허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경제의 주요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변신했고, K팝과 영화, 드라마는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누구나 자부심을 느낄 만한 성취다. 그런데 눈부신 성장의 한복판에서 누군가는 집값과 세금에 시달리고, 누군가는 입시 경쟁에 지쳐가며, 누군가는 갈수록 벌어지는 격차에 절망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에서 왜 국민의 눈물은 그치지 않는가.
가천대 경영학과 초빙교수 최영한은 이 책에서 이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꺼내 든다. 경제성장률과 수출 실적, 세계 시장에서의 성취만으로 선진국의 자격을 따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걸어온 길을 정치·경제·교육·문화·사회·독서라는 여섯 개의 창으로 들여다보며 성장의 이면에 남겨진 구조적 문제를 짚는다. 통계와 자료에 자신이 직접 겪고 관찰한 시대의 경험을 더 해 대한민국의 오늘을 진단하고 미래의 방향을 모색한다.
책의 출발점은 정치다. 저자는 지역주의와 정당 중심의 진영 대립,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 국민의 선택을 왜곡하는 정치 풍토를 비판한다. 특히 특정 지역에서는 특정 정당이 반드시 당선돼야 한다는 논리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권자가 후보자의 고향이나 출신 학교, 정당보다 누가 지역을 잘 이끌어갈 인물인지를 따져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개혁을 정치인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유권자 자신의 선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압축성장을 가능하게 한 산업화의 성과를 돌아보는 동시에 국가독점자본주의와 재벌 중심 구조, 기업가정신과 근로자의 자세를 살핀다. 과거의 성공 공식이 미래에도 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방식이 오히려 새로운 도약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제의 외형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살아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날카로운 비판이 향하는 곳은 교육이다. 저자는 우리 교육이 아이들을 성장시키는지, 아니면 경쟁을 통해 선별하는 데 그치는지 묻는다. 초·중·고교에서 시험을 위해 외운 지식은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상당 부분 잊힌다. 지식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자기 생각으로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단기간에 암기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책은 입시 중심 교육과 팽창하는 사교육, 영어 교육의 과잉, 말하기와 글쓰기 능력의 부족, 전공과 진로에 대한 고민 없이 이뤄지는 대학 진학까지 폭넓게 짚는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의대와 법학전문대학원 등 일부 진로로 몰리는 현실도 문제다. 저자가 바라는 사회는 부모나 교사가 정해준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사람이 많은 사회다. 공학과 인문학, 사회과학과 예술이 균형을 이루고 각자의 재능이 존중받을 때 창의성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의 목적을 좋은 대학과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에서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화에 대한 진단도 흥미롭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K컬처는 분명 대한민국의 자산이다. 그러나 문화상품의 성공이 곧 사회의 철학적 깊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음악과 미술, 체육 등 문화예술의 토양을 가꾸고 기초학문을 존중해야 창의성이 지속적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눈앞의 성과와 경제적 효용만 좇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생각과 독창적인 문화도 뿌리내리기 어렵다.
사회 분야에서는 ‘빨리빨리’ 문화가 남긴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압축성장은 효율과 속도를 앞세워 대한민국을 변화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경쟁과 비교가 일상화되고 사회적 연대는 약해졌다. 각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분위기와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공동체의 신뢰도 흔들린다. 부동산 가격 문제를 다룬 대목에서는 정책 실패가 집을 가진 사람에게는 세금 부담을,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을 안긴다고 지적한다. 정책의 결과는 권력을 쥔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국민의 일상에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런 거대한 사회 문제를 개인의 삶과 연결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나를 위해 마련된 맞춤형 일자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일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는 누구나 감수해야 할 불편함과 어려움이 따른다는 뜻이다. 사회 구조의 문제를 비판하면서도 개인이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는 태도와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다. 사회가 바뀌어야 하지만 개인 역시 남이 만들어놓은 길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다.
그렇다면 나아갈 길은 어디에 있을까. 저자가 마지막 해법으로 내놓는 것은 독서다. 철학과 역사,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 개인과 사회의 변화로 이어진다고 본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려면 자신만의 철학, 곧 마음의 중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공지능이 정보를 빠르게 찾아주고 답을 만들어주는 시대일수록 무엇이 옳고 중요한지 판단하는 능력은 더욱 절실하다. 지식을 많이 아는 것과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세우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한국 사회 비판서에 머물지 않는다. 압축성장의 성공을 부정하는 대신 그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묻는 사회 재창조의 제안서다. 특히 경제성장과 문화적 성취를 자랑하는 데 익숙한 우리 사회에 성장의 질과 시민의 삶을 함께 돌아보자고 제안한다는 점에서 출간 의미가 있다. 저자가 말하는 ‘압축된 성찰’은 더 빨리 달리기 전에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부터 확인하자는 주문이다.
물론 정치와 경제, 교육과 사회의 문제는 서로 얽혀 있어 단일한 해법만으로 풀기 어렵다. 저자가 제시하는 진단과 처방 역시 더 폭넓은 사회적 토론을 통해 검증하고 다듬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익숙한 성공담을 반복하는 대신 그 이면의 그늘을 돌아보고, 개인의 사유와 사회의 변화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
저자 최영한은 휘문고와 서울대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메이슨대와 건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와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웅지세무대 총장을 지냈으며 미국 유타주립대에서 방문교수로 연구했다. 현재 가천대 경영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재정학’, ‘경제학’, ‘한국재정 기본 틀 다시 짜기’ 등 경제·재정 분야 저서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