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여론조사 비용 대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오세훈 서울시장의 1·2심 유무죄 판단을 가른 건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진술에 대한 신빙성 평가였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명씨 진술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그중 일부를 인정해 오 시장에게 시장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명씨의 일부 진술만을 신뢰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나 그 진술을 보강하는 다른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구회근)는 23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오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오 시장의 후원자인 사업가 김한정씨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오 시장은 강 전 부시장과 공모해 명씨에게 4·7 서울시장 보선 관련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여론조사 10회(공표 3회·비공표 7회) 비용 3300만원을 김씨에게 대납하게 한 혐의로 김건희 특별검사팀(특검 민중기)에 의해 기소됐다.
2심은 이 사건에서 핵심 쟁점 관련 직접적인 증거는 명씨의 진술이 유일한데, 명씨의 진술은 전체적으로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은 명씨의 진술 중 직접 경험한 사실과 추측에 근거하거나 과장되게 진술한 부분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점,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 대해 주변적 설명만 반복 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점, 명씨의 진술 중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사정이나 주변 관련자들의 진술과 배치되는 부분이 다수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어 “명태균은 최초 김영선 등에 관한 정치자금법 위반 수사 중에는 오세훈과 관련한 혐의에 대하여 진술하지 않았는데 오세훈이 명태균을 고소하겠다고 발표한 2024년 12월경부터 본격적으로 오세훈의 정치자금 관련 혐의에 대해서 진술했다”며 “그 무렵 공개적으로 오세훈을 어떻게 엮는지 보라는 취지로 위협적인 말까지 했다”고 짚었다.
◆1심 벌금 1000만원→2심 무죄로, 2심 “명태균 진술 전반 믿기 어려워”
앞서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조형우)도 명씨의 진술을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오 시장의 당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할 동기가 인정된다고 봤다.
당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나 명씨의 여론조사 자료가 오 시장 선거캠프 측에 공유된 내역 등도 명씨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이에 1심은 지난 7월 오 시장이 10차례 여론조사 중 5건을 명씨에게 의뢰하고 비용 2100만원을 김씨가 대납하게 했다고 인정해, 오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하고 추징금 2100만원을 명했다.
2심은 명씨의 진술 신빙성을 더 엄격히 판단했다. 명씨 진술의 전반적인 신빙성이 약화된 상황에서 일부 진술만을 유죄의 근거로 삼으려면 이를 신뢰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나 그 진술을 보강하는 다른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2심은 명씨가 오 시장을 만나기 전부터 여론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김종인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지상욱 전 의원 등에게 지속해서 공유한 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명태균이 오세훈의 의뢰에 따라 여론조사를 수행했다기보다는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보궐선거라는 정치적인 격변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과시하고 김종인에게 접근해 특정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그 후보가 당선될 경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강하게 한다”고 밝혔다.
2심은 “결국 오세훈이 명태균에게 공소사실과 같이 구체적인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그 대가로 돈을 지급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오 시장 요청으로 김씨가 명씨에게 여론조사 비용을 대납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오세훈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법적인 여론조사 비용 대납을 김한정에게 대놓고 직접 요청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봤다.
2심은 김씨가 명씨 측에 수차례 돈을 지급한 사실은 명백하다며 유죄 의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명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나머지 증거의 단편적인 사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명씨, 영향력 과시 위해 여론조사”
명씨가 본인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나 영업활동의 일환으로 여론조사를 전달했다는 취지의 법원 판단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
오 시장 항소심과 같은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7부는 이달 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명태균 여론조사 무상수수 의혹’ 사건에서 1심의 징역 2년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하며 “명씨의 행위에 대한 동기는 인정 욕구 및 과시욕의 만족을 위한 정치적인 영향력 증대로 보인다”고 밝혔다. 명씨가 의뢰를 받고 여론조사를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를 이용했다고 본 것이다.
앞서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명태균 여론조사·통일교 금품수수 등 3대 의혹 사건을 심리한 1·2심 재판부도 “명씨가 자신이 운영하던 미래한국연구소의 영업활동 일환 또는 스스로 정치적 성향에 기인해 실시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여러 사람에게 배포한 것”이라며 김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