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서 라면 먹고 공연장서 맥주 마신다…유통업계가 문화에 빠진 이유

영화제에서 커피를 마시고, 박물관에서 탄산음료를 맛보고, 음악 페스티벌에서 맥주를 즐긴다. 소비자가 문화생활을 즐기는 현장이 유통업계의 새로운 마케팅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들은 제품 광고나 행사 후원을 넘어 문화 콘텐츠와 브랜드 체험을 결합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농심 제공

문화예술을 즐기려는 수요도 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6년 상반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6월 공연시장 티켓 예매 수는 약 1141만매, 판매액은 약 809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6.3%, 8.9% 증가했다. 공연시장은 상반기 기준 5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갔다.

 

유통업계는 이런 흐름에 맞춰 문화행사에 참여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영화제 관람객에게 행사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커피를 제공하고, 해외 영화제에서는 한국 라면을 직접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음악 공연과 제품 체험을 결합한 자체 축제도 잇따르고 있다.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 네스프레소는 지난 6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스폰서로 참여했다. 영화의전당 두레광장에서 7일부터 14일까지 커피 라운지를 운영하며 관람객에게 제품을 선보였다.

 

영화제 한정 메뉴로 '애플 클라우드'와 '솔티드 팝콘 라테' 2종을 마련했다. 커피에 솜사탕이나 팝콘을 더한 메뉴로, 영화 관람과 커피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포토부스와 경품 행사도 운영했다.

 

영화 산업 관계자를 위한 별도 공간도 마련했다. 더블콘 게스트 라운지와 벡스코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행사장에서 커피를 제공하며 일반 관람객뿐 아니라 영화계 관계자와도 접점을 넓혔다.

 

농심은 해외 영화제를 신라면 홍보 무대로 활용했다.

 

지난 9월 10일부터 5일간 캐나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의 거리 축제인 'TIFF Festival Street'에 참가해 '신라면 분식' 부스를 운영했다. 현장에서는 신라면 툼바와 신라면 김치볶음면 등을 시식할 수 있도록 했다.

 

방문객이 면과 스프, 토핑을 직접 조합하고 용기를 꾸미는 '신라면 컵 만들기'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농심은 해당 프로그램 수익금 전액을 토론토 지역 푸드뱅크에 기부하기로 했다.

 

농심은 앞서 전주국제영화제에도 참가한 바 있다.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신라면을 한국 식품이라는 범주를 넘어 일상에서 즐기는 문화 콘텐츠와 연결하려는 시도다.

 

오비맥주의 한맥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했다. 영화의전당에 마련된 '한맥 스무스 라운지'에서는 생맥주와 팝콘을 제공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시음 부스를 넘어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관객을 만나는 행사 장소로도 활용됐다.

 

영화제 공식 프로그램인 '아주담담'과 배우들의 대화 프로그램 등이 이곳에서 진행됐다. 브랜드가 관람객 휴식 공간을 제공하면서 영화제 프로그램 자체에도 참여한 사례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9월 1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2026 국중박 분장놀이'에 참가해 칠성사이다 체험 부스를 선보였다.

 

국중박 분장놀이는 참가자들이 박물관 소장 유물이나 문화유산 속 인물을 의상과 분장으로 재현하는 행사다. 올해는 전국 단위로 확대돼 275개 팀, 643명이 참가했다.

 

롯데칠성음료는 '국중박 분장놀이를 칠(Chil)하다'를 주제로 부스를 꾸몄다. 전통 단청과 나전칠기 장식을 활용하고, 칠성사이다의 별 로고와 전통 문양을 결합한 게임을 운영했다.

 

참가자들이 분장 스티커를 활용해 사진을 찍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시음과 굿즈 증정까지 연결해 전통문화 체험 속에서 칠성사이다를 접하도록 했다. 제품의 맛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를 한국 전통문화와 연결한 것이다.

 

주류업계는 문화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 이름을 내건 음악 페스티벌까지 직접 개최하고 있다.

 

오비맥주 카스는 지난 8월 22일 경기 과천 서울랜드에서 '2026 카스쿨 페스티벌'을 열었다. K팝과 록,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 공연에 워터쇼를 결합한 행사다.

 

몬스타엑스와 하이라이트, QWER 등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올랐다. 현장에는 카스 관련 굿즈와 체험 공간을 마련했다.

 

행사에는 약 2만명이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1차 얼리버드 티켓 2000장은 판매 시작 45초 만에 매진됐다. 카스 브랜드를 중심으로 음악과 물놀이를 함께 즐기는 축제를 구성한 것이다.

 

하이트진로도 지난 9월 12일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2026 이슬라이브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약 1만8000명이 방문했다. 하이트진로는 공연장에 이슬존·진로존·테라존 등 3개 구역을 마련하고 주류 판매 부스 9개와 음식 부스 34개를 운영했다.

 

참이슬과 테라를 비롯한 19종의 주류 제품을 판매했으며, 행사 당일 소주류 약 1만병과 맥주류 약 5만캔이 판매됐다. '쏘맥자격증 발급', '이슬네컷', '이슬오락실' 등 9개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됐다.

 

관객은 공연을 보면서 제품을 직접 마시고, 브랜드가 마련한 게임과 사진 촬영에도 참여했다. 제품 구매와 체험, 공연 관람을 하나의 행사로 묶은 셈이다.

 

기업들이 영화제와 공연, 박물관으로 향하는 이유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만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광고가 제품의 특징과 장점을 전달한다면 문화 마케팅은 소비자가 특정한 장소에서 제품을 직접 경험하도록 한다. 행사장에서만 제공하는 한정 메뉴나 브랜드 이름을 내건 참여 프로그램은 소비자가 사진과 영상으로 경험을 공유하는 계기도 된다.

 

기업별 접근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네스프레소는 영화제의 관람 경험에 커피를 연결했고, 농심은 해외 관람객에게 한국 라면을 직접 만들어볼 기회를 제공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전통문화를 활용했으며, 카스와 하이트진로는 음악 축제를 자체 브랜드 행사로 키웠다.

 

행사 방문객 수가 곧바로 제품 판매 증가나 장기적인 브랜드 충성도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마케팅 성과를 판단하려면 행사 이후 구매 전환율이나 재구매율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공통점은 분명하다. 기업들이 제품을 보여주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소비자가 직접 즐기는 문화생활 속에 브랜드를 넣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