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부터 붙이면 된다?”…AI 전환, 흔히 빠지는 세 가지 함정 [나인O'Clock]

AI 붙이기 전 업무부터 구조화
만든 도구도 필요 없으면 과감히 전환
현업 확산엔 OOH·단비 같은 공유 구조
“AX는 기술 아닌 문화”…데이터·사일로도 손봐야

기업마다 인공지능 전환(AX)을 서두르고 있다. ‘1인 1에이전트’, ‘AI 네이티브’, ‘업무 자동화’와 같은 목표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현업에 적용하면 첫 발걸음부터 쉽지 않다. 무엇을 AI에 맡겨야 하고, 어디까지 자동화해야 하며, 만들어 놓은 AI가 몇 달 뒤에도 유효할지 판단해야 한다.

 

“에이전트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일이 줄어든 건 아니잖아요.”

 

SK브로드밴드 AI 보드 이형진 팀장이 기업 AI 전환 현장의 세 가지 함정—AI 도구 우선 적용, 완성된 시스템 고집, 자연 확산 기대—을 지적했다. 기술보다 업무 구조화·데이터·조직 문화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실전 조언을 담은 이미지. 인공지능(AI) 플랫폼 ‘세계온(SEGYE.On)’으로 생성

지난 1년간 전사 AX를 추진해 온 이형진 SK브로드밴드 AI 보드 팀장은 기업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을 이렇게 짚었다. 눈에 보이는 AI 도구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업무를 얼마나 제대로 뜯어봤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SK그룹은 ‘1인 1에이전트’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이는 모든 직원에게 코딩을 시키는 그림과 다르다.

 

“AI를 새로 들어온 동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신입사원이나 경력직이 왔을 때 내 일을 알려주잖아요. AI한테도 그렇게 자기 업무를 알려주는 거죠.”

 

SKB AI 보드의 손승현 매니저(왼쪽)와 이형진 리더가 AI 보드 구성원들과 함께 AX 아이템에 대해 회의하고 있는 모습.

◆ 함정 ① AI부터 붙인다?

 

현업에서 “이 업무를 AI로 바꾸고 싶다”는 요청이 올라오면 곧바로 모델이나 도구부터 찾기 쉽다. SK브로드밴드 AI 보드는 그 전에 업무를 단계별로 구조화하는 업무혁신 프로세스(PI·Process Innovation) 시스템을 만들었다. 

 

업무를 큰 단위에서 실제 수행 업무까지 L1∼L4로 쪼갠 뒤, 각 업무가 불필요한지부터 자동화·AI 보조·사람이 맡아야 할 일인지 판정한다. AI 적용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업무 자체를 구조화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챗봇이 인터뷰하듯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하도록 해 팀과 개인의 업무 흐름을 정리하도록 했다. 이는 조직 안에서 특정 직원의 경험으로만 남아 있던 ‘암묵지’를 밖으로 꺼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PI(Process Inovation) 시스템을 통해 업무를 L1부터 L4까지 나눈 모습.

손승현 AI 보드 매니저는 “굳이 모든 것을 AI로 대체하라고 하지 않는다”며 “프로세스를 먼저 점검하고 없앨 업무가 있는지, 비효율적인 부분은 무엇인지 확인한 뒤 필요할 때 AI를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기안문 작성 지원 과제가 대표적이다. 연간 9만∼10만건의 데이터를 활용해 유사 사례를 찾고 초안을 작성하도록 하면 일이 줄 것으로 봤다. 그러나 현업과 업무를 뜯어보자 복잡한 결재선, 불명확한 전결 기준, 예산 정보 반복 입력 등 AI 이전의 병목이 보였다. 

 

이 팀장은 “자기 업무를 명확하게 뜯어볼 수 있는 건 결국 본인”이라고 강조했다. 

 

사내 AX 커뮤니티 플랫폼 '단비 커뮤니티'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모습.

◆ 함정 ② 만든 것은 지켜야 한다?

 

잘 만든 AI라도 계속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AI 보드는 출범 초기 회의 내용을 회사 형식에 맞춰 재구성하는 회의록 작성 에이전트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기존 서비스 기능이 고도화되면서 별도 에이전트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줄었다.

 

이 팀장은 이를 빠른 ‘피버팅(방향 전환)’이 필요한 사례로 꼽았다. AX가 빠른 조직과 느린 조직의 차이도 여기서 갈렸다. 이 팀장은 “변화가 빠른 조직은 처음부터 완성된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며 “리더가 먼저 AI를 공부하고 문제를 정의한 뒤 작은 단위로 실행하더라”고 말했다.

 

반면, 느린 조직은 기존 시스템통합(SI) 사업처럼 기능과 비용, 완성된 결과물을 모두 설계한 뒤 시작하는 경향이 있었다.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하면 그사이에 기술이 또 바뀝니다. 먼저 해보고 빠르게 피버팅하는 조직이 결국 빨리 갑니다.”

 

반대로 AI가 업무에 맞는 자리를 찾으면 효과는 크다. B tv 큐레이션팀은 외부 트렌드와 화제성 지표를 모아 콘텐츠 편성에 반영하는 작업을 자연어로 지시하면 AI가 코드를 짜는 바이브 코딩 기반 원클릭 도구로 바꿨다. 하루 가까이 걸리던 작업이 약 10분으로 줄었다. 

 

SK브로드밴드 AI 보드 팀장이 제시한 기업 AI 전환 전략: PI 시스템의 L1~L4 업무 분류(제거·자동화·AI 보조·인간 주도)를 통해 'AI부터 붙이기', '만든 것 고수하기', '좋은 도구면 저절로 퍼진다'는 세 가지 함정을 극복하는 방법을 형상화한 이미지. 인공지능(AI) 플랫폼 ‘세계온(SEGYE.On)’으로 생성

◆ 함정 ③ 좋은 도구를 만들면 알아서 퍼진다?

 

좋은 에이전트를 만들었다고 조직 전체가 알아서 쓰는 것도 아니다.

 

AI 보드가 현장 문제를 돕는 창구는 ‘오픈 오피스 아워(OOH)’다. 글로벌 데이터기업 팔란티어가 엔지니어를 현장에 보내 문제를 함께 푸는 ‘전방 배치 엔지니어(FDE)’ 모델을 참고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내용은 사내 AX 커뮤니티 ‘단비’에 축적한다. 눈에 띄는 것은 거창한 AI 시스템보다 점심 메뉴 추천이나 휴양소 빈자리 알림처럼 구성원이 직접 만든 가벼운 사례의 반응이 좋다는 점이다. ‘비개발자도 해 볼 수 있다’는 경험이 퍼져야 AI가 기술 조직만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로 느껴진다는 설명이다. 

 

AI보드 구성원이 직접 기획하고 개발한 '단비 커뮤니티' 홈 화면.

AX가 깊어질수록 문제는 도구에서 데이터와 조직 구조로 넘어간다. 이 팀장은 AI가 데이터의 의미와 맥락을 즉각 파악할할 수 있는 ‘AI 리더블(AI-Readable) 데이터’를 강조했다. 회사 안에 데이터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AI가 그 의미와 연결 관계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부서별로 데이터가 끊긴 조직 간 사일로(칸막이) 역시 AI 에이전트가 업무를 이어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 

 

이 때문에 이 팀장은 AX를 기술보다 문화의 문제로 본다. AI에게 무엇을 맡길지를 결정하려면 내가 어떤 일을 반복하고, 무엇을 판단하며, 어떤 데이터를 보고 아는지 먼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AX는 업무 프로세스를 정리하고 데이터를 AI가 읽을 수 있도록 만들고, 조직 간 사일로를 연결하면서 보안과 관리 기준까지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