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신압록강대교를 건너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당일치기’로 전격 방문했다. 방중 초기 중국 권력 서열 2위이자 행정·경제를 총괄하는 리창 국무원 총리가 단둥에서 김 위원장을 맞이했다는 관측이 국내 대북 소식통과 정보 당국 등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귀국한 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발표한 공식 보도는 달랐다. 김 위원장을 단둥 현지에서 영접하고 전 일정을 수행한 인물은 리창 총리가 아닌, 권력 서열 4위인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었다. 최고지도자의 방중이라는 외교 이벤트에 왜 행정부 수반인 총리 대신 정협 주석이 파견되었을까. 이는 중국 지도부의 치밀한 정무적 계산과 의전 전략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왕후닝 정협 주석은 장쩌민, 후진타오에 이어 시진핑 주석에 이르기까지 3대 최고지도자의 통치 이념을 설계한 중국 최고의 ‘브레인’(이데올로그)이다. 현재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서열 4위이자 정협 주석으로서 통일전선과 대만·소수민족 정책은 물론 대외 정당 외교를 총괄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북·중 관계는 일반적인 국가 간 외교를 넘어 중국공산당과 북한 노동당 간의 사회주의 연대라는 ‘당 대 당’ 특수성을 핵심 축으로 한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행보가 항미원조기념탑 헌화와 기념관 참관 등 역사적·이념적 유대를 재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를 감안하면 시진핑 주석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고 ‘공동의 사회주의 사업’을 강조할 메신저로, 실무 경제와 행정을 총괄하는 총리보다 당의 이론적 정통성과 상징성을 대변하는 왕후닝 정협 주석이 가장 적격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내부의 긴박한 정치 일정 역시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공산당은 다음 주 국가 중장기 경제 발전 전략을 확정하는 최대 정치 행사인 제20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20기 5중전회)를 앞두고 있다. 차기 경제계획 수립과 보고서 작성 등 회의 실무를 진두지휘해야 하는 리창 총리로서는 전원회의 직전 베이징을 비우고 국경 도시로 내려가기에는 물리적·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리창 총리는 베이징에서 5중전회 준비에 전념하고, 왕후닝 정협 주석이 단둥 현지로 이동해 최고지도부 상무위원급 예우를 갖추는 ‘역할 분담’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의전과 참석자 면면에서도 양국의 높은 정무적 비중이 드러났다. 중국중앙(CC)TV 보도 영상에 따르면, 북한 측에서는 김여정 노동당 부장, 최선희 외무상, 조용원 당 비서 등 김정은 체제의 핵심 실세들이 총출동했다. 중국 측 역시 왕후닝 주석 외에 외교 사령탑인 왕이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 류하이싱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배석해 무게감을 더했다.
결국 이번 단둥 회동은 당초 예상됐던 행정적 경협 논의를 넘어, 최고지도부 상무위원이 직접 나서 ‘전통 혈맹’의 정치적 신뢰를 다지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면서도 신압록강대교 개통과 자동차 공장 시찰을 통해 향후 5중전회 이후 본격화될 실질적 경제 협력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