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산하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 방글라데시·라오스·요르단 등에서 추진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서 현지에 설치한 기자재가 도난당하거나 시설이 훼손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했다. 100억원 넘는 예산을 투입해 구축한 인프라가 현지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면서 사업 효과가 떨어지고, 사후관리 체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건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코이카는 2020~2025년 방글라데시에서 118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능형교통체계(ITS) 활용 국가 간선도로망 안전망 강화 사업’을 추진했다. ODA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 등이 자금이나 기술 등을 제공하는 개발협력 사업이다. 코이카는 방글라데시의 도로 교통안전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과속단속카메라와 차량검지기(VDS) 등 지능형교통체계(ITS) 장비를 32개소에 설치했다.
그러나 올해 초 ITS 장비가 설치된 6개소에서 장비 도난과 파손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폐쇄회로(CC)TV 어댑터가 분실되고 가변정보표지(VMS) 관련 장비와 차량검지기(VDS) 함체 등이 파손됐다. 코이카는 2024년 관련 장비와 시스템을 방글라데시 측에 인계했으며, 이후 현장 장비의 운영과 유지관리는 방글라데시 도로청과 도로청이 계약한 교통관리센터(TMC)가 맡아오고 있었다.
도난 사실은 지난 3월 19일 TMC 운영사가 처음 파악해 코이카에 알렸다. 코이카는 추가 보안 조치를 시행하고 일부 잔여 장비를 회수해 보관하는 한편 5월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도 6월과 8월 사이 세 차례의 추가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관련 사건의 용의자 5명은 지난 10월 검거됐다.
문제는 장비 도난으로 우리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구축한 현지 교통안전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설치한 ITS 장비 32개소 가운데 현재 11개소만 가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난당하거나 훼손된 장비가 전원 계통과 관련돼 일부 설비의 전원 공급과 통신이 끊긴 탓이다. 1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만든 인프라가 현지 도난과 장비 훼손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사업 효과가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지 치안 여건과 유지관리 역량을 사업 추진 단계부터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업 종료 후 현지 기관에 시설과 장비를 인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난·훼손에 대비한 보안 대책과 지속적인 유지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다른 국가에서도 확인됐다. 코이카는 지난해 요르단에서 실시한 ‘기술고등학교 설립 지원 사후지원 기자재 하자보수 사업’ 과정에서 1000만원 상당의 자동차기계공과 교육 장비 필수 부품이 분실된 사실을 파악했다. 해당 사업은 코이카가 2017~2022년 145억원을 투입해 요르단의 기술고등학교 설립을 지원한 사업이다. 라오스에서도 2019~2025년 추진된 도립병원 내 통합모자보건경영교육센터 지원사업에서 332만원 상당의 노트북과 데스크톱이 도난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100억원이 넘는 국민 혈세를 투입하고도 장비 도난과 훼손으로 시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사업 성과가 저하되고 대한민국의 신뢰와 위상도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ODA사업에 대한 점검 강화를 위해 자신이 대표발의한 ‘ODA 모니터링법’이 지난달부터 시행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현지 운영 실태와 사업 성과를 끝까지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